영농/버섯

국산 품종으로 최고 값 받는 표고버섯 농가 길승근 씨

강토백오 2011. 11. 27. 22:10

국산 품종으로 최고 값 받는 표고버섯 농가 길승근 씨
글·사진 / 김소영 (농민신문 기자)
종균 접종 상태를 살펴보는 길승근 씨
겨울철에는 종균을 접종할 참나무 원목을 준비해 놓는다.
원목 상태를 살피는 길승근•차정순 씨 부부
2kg 소포장 상자. 경기 화성시공동 브랜드인 ‘햇살드리’가 인쇄되어 있다.
시설하우스 바닥에 깔아놓은 마사토
종균을 접종한 뒤 세워놓은 참나무원목
표고버섯이 발생한 참나무 원목

입맛을 돋우는 쫄깃한 식감이 일품인 표고버섯. 맛뿐만 아니라 영양까지 좋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사랑받는 인기 식품이다. 이런 표고버섯을 20년 넘게 재배하며 인생 후반기를 활기차게 열어가는 임업인이 있다. 경기 화성과 충북 제천을 오가며 최고 품질의 표고 생산에 구슬땀을 흘리는 길승근 씨(50)가 주인공이다.



재배 최적지 찾아 세 번이나 옮겨

표고 재배는 크게 원목재배와 톱밥배지재배 방식으로 나뉜다. 길승근 씨는 원목을 사용해 버섯을 생산한다.
충북 제천시 덕산면에 위치한 그의 농장엔 차광막을 씌운 버섯 하우스 16개 동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하우스 안엔 800본(개)에서 1,000본에 달하는 참나무가 빼곡하다. 겨울이라 아직은 나무에 버섯이 발생하지 않았다. 종균을 접종하고 난 뒤 스티로폼으로 막아놓은 구멍만이 잔뜩 보인다.
“한때 배지재배를 시도해봤지만 서툴러서인지 잘 안 되더라구요. 경쟁력을 갖추려면 배지를 찍는 자체 시설을 마련해야 하는데 목돈이 들어가는 것도 부담이었구요. 번거롭긴 해도 제가 가장 자신 있는 원목재배를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벌써 20년 전이네요.”
그가 처음부터 이곳에서 버섯을 재배한 건 아니다. 경기 용인시 수지구에서 농사를 짓다 도시개발로 토지가 수용되면서 화성시 팔탄면으로 옮겼고, 얼마 후 제천으로 내려왔다. 현재는 화성의 하우스를 정리해 제천으로 서서히 이전하는 중이다.
경기 양평이 고향인 그가 연고가 전혀 없는 충북을 선택한 건 오염되지 않은 자연환경 때문이다. 표고는 물과 공기 등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데, 공장이 밀집한 수도권보다는 인적 드문 시골이 아무래도 나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집이 화성이라 오가는 데 살짝 불편하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내려오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이전보다 버섯 발생률이 크게 늘고 품질도 눈에 띄게 좋아졌거든요.”


기본에 충실한 품질관리로 시장 최고 값 받아

그의 버섯은 시장에서 명품으로 통한다. 생산 버섯 전량을 출하하는 서울 가락시장엔 그의 이름만 보고 물건을 사 가는 중도매인이 있을 정도다. 그가 속한 팔탄표고버섯작목반 내에선 혼자서 최고 값을 도맡는다며 부러움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비결이 무엇일까. 의외로 단순한 대답이 돌아온다. “국산 우량 품종을 쓰고, 품질 관리를 남들보다 세심하고 꼼꼼하게 한다”는 것.
그가 사용하는 품종은 ‘산림조합 302호’다. 중저온성인 이 품종을 고집하는 것은 뛰어난 품질 때문이다.
“재배가 까다롭지만 육질이 쫄깃하고 맛이 월등히 좋습니다. 버섯 특성을 파악해 관리를 잘 해준 결과, 남들은 9월에 수확하지만 저는 6월부터 버섯을 땁니다. 덕분에 여름철에도 1kg당 3만 원 정도의 좋은 시세를 받죠.”
버섯 평균 시세가 1kg에 1만 원 남짓인 것을 감안하면 3배 이상 높은 가격이다. 1년을 놓고 봐도 남들보다 30%는 값을 더 받는 셈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재배과정에서 그가 특히 신경 쓰는 것은 통풍 조절 등 기본에 충실한 하우스 관리다.
“바람을 잘 통하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또 푸른곰팡이 등은 생석회 등으로 미리 소독해 발생을 차단하구요. 재배기간이 끝나면 하우스 바닥에 마사토를 새로 까는 등 객토도 잊지 않습니다. 차광막 등을 꼼꼼히 덧대주는 것은 물론이구요.”


버섯산업 경쟁력 향상 위해 종균 구입비 지원해주었으면

품질에 자신 있는 그이지만 쏟아져 들어오는 중국산 표고 앞에선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한다.
“중국산이 많이 들어와 큰 문제예요. 가락시장에 가면 경매를 기다리는 중국산 생표고가 즐비합니다. 품질도 날로 좋아져 전문가가 봐도 원산지를 구분하지 못할 지경이구요. 행여 국산으로 둔갑하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표고 농가들은 지난해 국정감사 기간에 한바탕 곤욕을 치러야 했다. 시중에 유통되는 표고에서 중금속이 검출됐다는 방송사의 잘못된 보도가 나오면서, 소비자들이 국산 표고를 외면했던 것. 그 역시 답답함을 호소했다.
“중금속이 검출된 것은 외국산으로 확인됐는데 잘 알려지지 않아 농가들만 속앓이를 했잖아요. 국산 표고는 친환경적으로 재배된다는 점을 소비자에게 널리 알렸어야 하는데 아무런 대책이 없더라구요.”
산림청 등 정책 당국에 대한 쓴소리는 종균 구입비 지원에도 이어졌다.
“버섯 농가에겐 종균 구입비가 큰 부담입니다. 표고 주산지인 전남 장흥 등 일부 지자체에선 지원해준다고 합니다만, 표고버섯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국가 차원에서 지원해주면 좋겠어요.”


버섯도 양보다는 질이 대접받는 시대

최근 귀농 인구가 늘면서 표고 재배를 시작하려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는 이들에 대한 따뜻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 귀농한 농가들이 경험 부족으로 실패한 후, 농가수가 줄었어요. 어느 정도 구조조정이 된 셈이죠. 하지만 초기 투자비가 많이 들고 자금 회전이 느린 데다, 기술 수준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에 섣불리 뛰어들다가는 낭패 보기 쉽습니다. 작은 규모로 1~2년 재배해본 뒤 자신이 생기면 그때 본격적으로 시작해도 늦지 않아요.”
하우스 주변의 재배환경을 잘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누구나 표고버섯을 생산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상품가치가 있는 버섯을 얼마나 많이 생산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버섯도 양보다 품질이 대접받는 시대가 됐거든요.”
그는 조만간 톱밥배지재배를 재개할 계획이다. 원목 구입이 쉽지 않고 인건비가 오르는 등 원목재배 여건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기 때문. 반면 배지재배는 날씨 영향을 덜 받고 일정 규모의 생산시설을 갖춘다면 연중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어 매력적이다. 최근 들어 농가들 사이에서 배지재배 기술이 안정화된 것도 결심에 한몫했다.


규모 확대 위해 배지재배 도입도 검토

하지만 팽이버섯이나 새송이버섯의 전철을 밟지 않는 것은 그에게도 큰 숙제로 남는다. 이들 버섯은 대량생산 체계를 갖춘 후 공급이 과잉되면서 가격 폭락을 여러 차례 겪은 전례가 적지 않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최근 자료는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한다. 전체 표고 생산량 중 배지 표고 비율이 2007년 5% 미만에서 2009년엔 15~20%로 최대 4배 증가했다. 가락시장에선 기존 관례를 깨고 생표고의 최고 시세를 원목 표고가 아닌 배지 표고가 차지하는 일이 점차 늘고 있다.
이처럼 버섯 산업을 둘러싼 여건이 녹록치 않지만, 그는 희망과 긍정의 끈을 놓지 않는다. 동갑내기 부인 차정순 씨가 5년 전 늦둥이 아들을 낳아 주위로부터 놀라움과 부러움을 샀던 즐거운 기억을 꺼내는 것은 그 증거다.
“표고버섯을 언제까지 재배할 거냐구요? 글쎄요, 한 15년, 20년은 거뜬히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양보다는 질로 승부하는 표고 생산에 자신 있거든요. 이제 여섯 살인 우리 막내가 대학 갈 때까지는 표고 농사를 계속할 작정이에요. 그때 한 번 더 취재 오세요!” 20년 후 그가 거둔 성공이 과연 어떨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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