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면 된다’는 군인정신으로 무장한 임업인이 있다. ‘서삼릉버섯농장’ 대표인 신영무 씨(51•경기 고양시 원당동)가 그 주인공. 표고 버섯 재배로 성공적인 인생 2모작을 꿈꾸는 귀농 8년차 신씨의 삶을 들여다봤다.
아무 것도 모르고 뛰어든 버섯 재배
“군인정신 아시죠? 이것저것 재고 따지면 할 수 있는 게 없죠.” 경기 고양의 서삼릉 근처에서 표고버섯을 원목재배하는 신영무 씨는 어쩌다 군인에서 표고버섯 농가로 변신하게 됐느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대답했다. 군 출신 아니랄까봐 군더더기 하나 없는 깔끔한 언변이다. 하지만, 8년 전 육군 소령으로 예편하면서 뛰어든 버섯 재배가 순조로웠느냐에 대한 물음에선 잠시 머뭇거렸고 감정이 북받치듯 목소리도 약간 떨렸다. 그에게 8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말복과 입추가 지났지만 여전히 무더위가 맹위를 떨치던 8월의 어느 날, 신씨의 농장은 표고버섯을 사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사적인 얘기를 주고받는 걸 보니 오랜 단골들 같았다. 품질 좋은 표고버섯을 시중보다 저렴하게 판매한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그는 생산량의 70%를 현장에서 판매한다. 인근의 주부와 음식점 주인들이 주 고객이다. 단골로 칠 수 있는 사람만 6,000명이 넘는다. 이만하면 표고 재배로 자리를 잡은 것 아니냐는 인사에 손사래를 친다. “처음엔 어려움이 많았죠. 표고버섯을 재배하겠다는 의지만 있었지, 아무 것도 모르고 뛰어들었거든요. 지금도 자리를 잡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버는 대로 투자하고 있어서 아직 큰돈을 만져보지는 못했네요, 하하.” 군인에서 표고버섯 농사꾼으로 변신하게 된 배경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군인이라 제주도 빼곤 전국 8도를 다 다녔죠. 전북 전주에서 근무할 때 산속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버섯 농가를 만나게 됐어요. 그게 한 15년 전쯤 될까요. 버섯 농사에 처음 관심 갖게 됐죠. 하지만 당시만 해도 본격적으로 버섯 농사를 지을 생각은 꿈에도 없었어요. 그러다 제대를 4~5년 앞두고,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던 차에 예전에 봤던 버섯에 생각이 미쳤어요.”
100여 농가 찾아다니며 실패 사례 꼼꼼 기록
결심이 서자 외박이나 휴가, 공휴일마다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귀동냥 눈동냥 하러 무턱대고 찾아간 농가가 100여 곳이 넘는다. 특이한 건 농가들의 성공 비결보다는 단점이나 실패 사례에 더욱 관심을 가졌다는 것. 하지만 만난 이들의 99%가 버섯 재배를 말렸다고. 중국산 표고가 국내 시장을 장악하고 있기도 했지만 일이 너무 고되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의욕이 꺾일 무렵, 한 농가에서 기대하던 대답을 들었다. 경쟁력만 갖추면 버섯 농사도 해볼 만하다는 것. 이 한마디에 힘을 얻고 버섯 재배에 과감히 뛰어들었다. 하지만 의지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다. 첫 수확을 앞두고 종균 사고가 터져 수확은커녕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가족을 설득해 시작한 버섯 재배에서 돈을 벌기는커녕 몸고생 마음고생만 시켜 가족들 보기가 미안해졌다. 포기할까 고민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부인 안인숙 씨(49)의 격려로 한 번만 버텨보자는 게 여기까지 왔다.
첫 실패를 품질개선과 규모화로 이겨내
농사도 농사지만, 피해 보상 과정에서 농촌진흥청의 지역별 농산물 소득자료가 너무 부실해 더욱 억울했다는 신씨. 정부에 찾아가 직접 따지고도 싶었지만, 그러기엔 시간과 비용이 아까웠다. 종균 사고로 허비한 시간을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경쟁력을 높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경쟁력은 품질개선과 규모화로 높여 나갔다. 재배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한국농수산대학 등 버섯 관련 기관을 쫓아다녔고, 농업인들과의 교분을 통해 기술력을 키웠다. 이런 활동들은 많은 것들을 변화시켰다. 군(軍)에서 체득한 리더십을 눈여겨본 농업인들의 추천으로 고양시 농업인사이버연구회를 4년째 이끌게 됐고, 지역 내 농민단체 일도 맡게 됐다. 재배기술에 대한 자신감은 친환경 인증으로 이어졌다. 노력 끝에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으로부터 무농약 인증을 받았고, 고양시 브랜드 ‘행주치마’와 경기도가 보증하는 ‘G마크’를 잇달아 획득했다. 규모화를 통한 비용 절감에도 나섰다. 처음 3,960㎡(1,200평)에 불과했던 버섯 재배사 면적을 점차 늘려 현재의 1만 4,850㎡(4,500평) 규모로 키웠다. “동네 마트 한곳에 댈 정도의 물량만으론 한계가 있더라구요. 더구나 표고버섯 재배는 노동력 까먹는 장사라 일정한 규모화가 필수라는 걸 깨달았죠.”
버섯 재배에서부터 체험농장까지
표고버섯은 가격 급등락이 심한 편이다. 때문에 생산자에겐 안정적인 판로 확보가 늘 숙제였다. 그도 처음엔 서울 가락시장이나 강서시장에 출하하기도 했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경매가가 낮게 책정될 때가 적지 않았고, 운송비와 상하역비•수수료 등이 너무 많아 포기했다. 대신 농장의 입지적 장점을 최대한 살렸다. 농장 주변에는 농협대학을 비롯해 종마공원, 서삼릉 등 명소가 적지 않아 도시민들이 많이 찾는다. 품질과 가격면에서 경쟁력을 갖췄기 때문에 농장 앞에서 홍보만 잘해도 팔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은 적중했다. 일반인들은 물론 인근 음식점에서 대량으로 주문하기 시작했다. 소비자의 욕구를 반영해 생표고 외에 햇볕에 말린 건표고와 슬라이스 표고•가루 표고 등으로 제품을 다양화했다. 농장 한켠엔 다양한 표고버섯 요리법이 담긴 리플릿을 비치해 주부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표고버섯 나물에서부터 표고전•조림•죽•영양밥•샤브샤브•탕수육•숙회•차 등 부인이 개발한 이색 표고 요리들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달았다. 얼마 전에는 상황버섯으로까지 품목을 넓혔다. 표고버섯과는 재배방식이 달라 망설였지만 건강 열풍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버섯 따기 체험농장도 꾸렸다. 도시민들을 대상으로 체험 농장을 연다면 승산이 있으리란 판단에서다. 시설하우스 앞쪽에 수세미와 조롱박 터널도 조성하고, 농장 한쪽에 연꽃도 심어 볼거리를 늘려 나가고 있다. “아직은 준비단계라 성과는 없지만 내년 이맘때면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을 겁니다. 버섯으로 시작해서 체험농장까지, 그야말로 오감만족 농장을 꾸려갈 생각이에요.”
대(代) 이은 버섯 사랑
그의 또 다른 희망은 아들에 있다. 아들은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 한국농수산대 버섯과에 입학했다. 학교 특성상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지만 대한민국 남자라면 군대에 다녀와야 한다며 자원입대한 아들이다. 군 장교 출신인 그에게 이런 아들이 어찌 기특하지 않을 수 있으랴. “중령•대령급 군 동기들이 많아 ‘편한 곳’으로 보낼 수도 있었지만,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놔두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지켜만 보고 있습니다. 현재 강원도 화천에서 철책근무를 서고 있는 아들이 제대할 즈음이면 한층 성숙한 모습이겠구나 생각하면 걱정보다는 뿌듯함이 앞서죠.” 아들과 함께 버섯 농사를 지을 생각을 하면 더욱 힘이 난다는 그. 그래서 틈만 나면 규모를 키우고 다양한 재배방법을 적용해본다는 그에게서 표고버섯 향 가득한 짙은 가족애가 묻어났다. 부자(富者) 임업인을 꿈꾸는 부자(父子) 버섯 농가를 취재할 그날이 기다려진다.
서삼릉버섯농장 연락처 : 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