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관하여/조경수

몰디브 빵나무 소금 피해 이야기

강토백오 2011. 11. 27. 22:10

몰디브 빵나무 소금 피해 이야기
글·사진 / 이경준 (서울대학교 산림과학부 명예교수)
몰디브에서 주식으로 하고 있는 빵나무 열매. 전분을 추출하여 전병을 만들어 먹는다.
소금 피해로 완전히 죽은 빵나무
쓰나미로 소금 피해를 입고 죽은 정원의 나무들. 빵나무, 망고, 구아바가 가장 큰피해를 입었다.
쓰나미로 부서진 집들. 인도네시아를 향한 동쪽 바닷가에서 더 큰 피해가 생겼다
죽어가는 망고나무에 링거 수간주사(액체비료, 식물호르몬, 비타민 포함)를 놓고 있는 모습. 나무 주변에 도랑을 파고 자주 관수하여 소금을 제거할 것을 권장하였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몰디브의 산호섬들
관광지 해안가에 세워진 방갈로들. 별 5개의 특급 호텔 수준이다.
코코넛으로 만든 원주민이 사는집. 코코넛은 식량, 목재, 농사용 자재, 연료, 비료 등으로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자원이다.
관광지로 개발된 몰디브 산호섬과 주변의 에메랄드빛 해안가

‘빵나무(bread fruit)’라는 것이 있다. 전분이 들어 있는 열매를 식량으로 이용하는 나무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빵나무는 태평양지역 섬나라에만 자생하는 열대성 식물인데, 학명은 Artocarpus altilis로써 뽕나무과에 속하며 10m 이상 크게 자라는 교목이다. 직경 13cm에 달하는 열매에서 전분을 뽑아 전병을 만들어 먹는다. 밀가루보다 맛이 떨어지지만 가난한 섬나라에서는 빵나무 열매를 아직도 주식으로 하는 민족들이 있다. 한국의 참나무류의 열매인 도토리도 전분을 가지고 있지만 과거에 구황식물의 역할을 했을 뿐 식량을 대체할 정도로 이용되지는 못했다.
2004년 12월 26일, 성탄절 다음날 이른 아침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서쪽 바다에서 진도 9.0의 강진이 발생했다. 그 여파로 쓰나미(tsunami)가 주변 국가를 강타했다. 쓰나미가 시속 600km의 빠른 속도로 이동한다니 그 위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KTX의 최고속도가 시속 300km인데, 그 두 배의 속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 몰디브, 그리고 멀리 아프리카 동부해안까지 파도가 밀려들어 소말리아와 예멘도 영향을 받았다. 이로 인해 총 25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정말 우리를 슬프게 했던 대재앙이었다.
몰디브(Maldives)는 인도 남서쪽에 위치한 섬나라로 한국 젊은이들에게는 신혼여행지로 가장 선호하는 지상낙원으로 알려져 있다. 1,190개의 작은 산호섬으로 되어 있고 인구는 29만여 명이다. 산호초가 부서져 쌓여 만들어진 섬이기 때문에 가장 높은 지대가 해발 2.5m밖에 되지 않는다.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높아지면 가장 먼저 물에 잠기게 될 나라가 몰디브라고 한다.
당시 쓰나미는 몰디브의 동쪽 해안을 덮치면서 대부분의 국토가 바닷물 속에 잠겨버렸다. 바닷가 주택이 무너지고 바닷물은 작은 섬에서 곧 퇴각했지만, 토양 속에 남아 있는 소금이 문제였다. 식수로 쓰고 있는 모든 우물이 바닷물로 오염되어 당장 식수를 구할 수 없게 되자 유엔이 급히 나서서 구호물자로 생수를 보내주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후유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건강하던 나무들의 잎이 서서히 갈색으로 변하면서 바나나, 파파야, 망고를 비롯해서 주식으로 사용하는 빵나무도 죽어갔다. 전국의 모든 섬에서 동시에 나무들이 죽어가고 있으니, 온 국민이 굶어 죽을 판이었다.
2005년 1월 중순 필자는 필리핀에 본부를 둔 아시아개발은행(ADB, Asia Development Bank)으로부터 긴급한 연락을 받았다. 나무 전문가를 급히 몰디브에 파견하여 빵나무를 살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기꺼이 이 제안에 응했다. 필자가 1999년 서울대학교에 수목병원을 설립하고 그동안 나무의 건강진단을 해왔기 때문이다. 필자는 급히 한국, 필리핀, 태국의 전문가 6명으로 국제조사단을 구성하고 필자가 단장을 맡았다. 쓰나미가 강타한 지 2개월이 경과한 2005년 2월 28일 우리 팀은 농업 분야에서 최초의 국제조사팀으로서 몰디브에 도착했다.
3월 4일 우리 일행은 배를 타고 첫 번째 방문지인 마엔부두 섬에 도착했다. 총면적이 5만 1,000평(동서 방향 960m, 남북 방향 320m) 정도밖에 안 되고, 원주민이 122가구에 불과한 작은 섬이었다. 인구 900명의 섬에는 자동차가 한 대밖에 없었고, 전화라고는 공중전화가 한 대 설치되어 있을 뿐이며, 섬에는 발전기가 한 대 있어 밤에만 전기를 가정에 보내고 있었다. 농사를 거의 짓지 않고 나무 열매를 따 먹고 고기를 잡아먹는 수준이었다.
도착하면서 받은 첫인상은 바닷가의 나무들이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점이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바닷가에서 자라는 코코넛과 무궁화는 소금에 견디는 힘이 있어 피해를 받지 않았다.
한 가지 놀란 사실은 이 섬의 지하수위가 0.6~1m 밑에 있다는 것이었다. 산호초로 생성된 섬들은 그 규모가 작고 산호가 부서져서 생긴 모래땅이기 때문에 바닷물이 주거지의 땅밑에까지 쉽게 침투해 대수층(aquifer)을 형성하고, 담수인 빗물이 그 위에 살짝 떠 있게 된다. 집마다 우물이 있고 이 물을 식수로 이용하고 있었다.
이곳은 평균해발고가 1.6m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섬이다. 12월 26일 오전 9시 20분에 쓰나미가 들이닥쳐 남쪽은 1.8m, 북쪽은 0.9m 높이로 침수되었으나 물은 두 시간 반 만에 물러갔다. 122채의 가옥 중에서 18채가 완전히 부서지고 96채는 부분적으로 파손되었으나, 인명피해는 없었다. 바닷물이 빨리 빠져나가서 나무에 대한 피해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건강한 나무가 더 많았고, 빵나무, 망고나무, 구아바가 일부 죽어가고 있었다. 우물물도 소금으로 오염되었으나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필자는 나무혈압계에 해당하는 샤이고메터(Shigometer)로 나무가 살아 있는지를 확인하면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는 나무에는 링거(Ringer's Solution) 주사를 놓았다. 일반 병원에서 쓰는 5% 포도당 주사액에 액체비료, 식물호르몬, 비타민을 섞어서 수간주사를 실시하여 활력을 넣어주기 위함이다. 비가 좀 와서 토양 중의 소금을 제거해주기를 기도했다. 비가 전혀 오지 않으면 잔류 소금 때문에 수간주사의 효과가 적어지기 때문이다. 이 나무의 운명은 우리 손보다는 하늘에 달려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었지만 열심히 주사를 놓았다. 몰디브는 11월부터 5월까지 건기가 계속되는데, 공교롭게 쓰나미가 건기의 초기에 찾아왔기 때문에 나무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주고 있었다.
두 번째 방문지는 디야미길리 섬이었다. 첫 번째 섬과 비슷한 크기지만, 피해가 더 심한 곳이었다. 많은 나무가 죽어가고 있었으며, 특히 섬의 중앙은 낮은 지대여서 나무가 모두 죽었다. 그리고 우물물이 바닷물로 오염되어 식수로 쓸 수 없는 지경이었다. 저녁에 샤워를 해야 하는데 오염된 지하수로 인하여 물에서 황화수소(H₂S) 냄새가 심하게 나서 우리 일행 중 교수 한 명은 피부병이 생기기도 했다.
소금 피해를 받고 있는 나무에게 관수를 해서 흙 속의 소금을 제거한다면 그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주민들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자기 마당의 우물물이 어느 정도 오염되어 있는지를 판단할 수 없어 그냥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집집마다 방문하여 죽어가는 나무에 주사를 놓고, 우물물의 염도를 측정하였다. 먹을 수 있는 물, 먹을 수 없으나 관개수로 쓸 수 있는 물, 그리고 너무 짜서 전혀 쓸 수 없는 물로 분류해서 알려주었다.
물속에 들어 있는 소금의 염도는 보통 전기전도도계를 이용해서 데시지멘스 퍼 미터(dS/m)으로 표시한다. 바닷물의 소금함량은 보통 3%로, 50dS/m 정도 된다. 1.0dS/m 이하면 먹을 수 있고, 2.0~2.5dS/m까지는 농업용 관개수로 쓸 수 있으며, 그 이상 소금이 많으면 짠물로 쓸모가 없다.
이 섬에는 쓰나미가 들이닥친 동쪽 바닷가에 숲이 조성되어 있었다. 방조림(防潮林)에 해당되는데, 이 숲이 높은 파도의 위력을 잠재워서 인근의 가옥 피해가 거의 없었다. 숲의 고마움을 눈으로 직접 보여준 경우였다. 산이 없고 숲도 거의 없는 몰디브에서 숲의 혜택에 대해 강의할 수 있어 무척 반가웠다. 후에 필자는 다른 섬에서도 방조림의 효과를 확인하였으며, 최종보고서에 바닷가에 반드시 방조림을 조성할 것을 첫 번째 권장사항으로 적어넣었다
세 번째 방문지는 칼라이두 섬이었다. 피해가 가장 심하다고 알려진 곳이었다. 이 섬은 대부분 지역이 평균 40cm 깊이로 3~4일간 물에 잠겨 있었다고 한다. 다른 섬보다 조금 더 크고 배수가 잘 되지 않는 토양 때문이었다. 특히 낮은 지역에는 아직도 바닷물이 남아 있어 늪지대 같이 보였으며, 유황 냄새가 나면서 나무가 전멸했다. 주택 마당에 심어놓은 대부분의 빵나무와 망고나무도 죽어가고 있었다. 특히 40년이나 된 큰 망고나무가 죽어가고 있어 마음이 아팠다. 그 밖에 바나나와 파파야도 지상부가 죽어 있었다.
마지막 방문지는 적도에 가장 가까운 빌링길리 섬이었다. 도청소재지로 인구가 2,900명에 달하여 주변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큰 섬이지만, 남북 방향으로 1.7km, 동서 방향으로 0.54km에 불과한 섬이다. 우리는 영빈관에 머물면서 도지사도 만났는데, 처음으로 에어컨과 모기장이 있는 침대에서 편안히 잘 수 있었다. 식사도 품위 있는 식당에서 그동안 지겹게 먹던 카레 대신 양식을 제공받았다.
이 섬도 쓰나미 피해가 심했으며, 지난 1월 말경 소나기가 두세 차례 세차게 퍼부었으나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실제 나무 피해는 다른 섬과 마찬가지로 심했다. 이 섬에는 몇 그루의 큰 망고나무가 건강하게 살아 있어 탐문해보니 이유가 있었다. 부잣집에는 예외 없이 대형 플라스틱 물탱크가 여러 개 설치되어 있었다. 우기에 지붕에 떨어지는 빗물을 저장해두었다가 건기에 사용하는데, 이 물을 망고나무에 가끔 주어 나무를 살릴 수 있었다. 우리는 주민들에게 오염되지 않은 우물물을 이용해 나무에게 가능한 한 물을 자주 주라고 조언했다.
이 섬에는 다른 섬들보다 망고나무가 많이 심겨져 있었다. 지름이 큰 성숙한 망고나무 한 그루는 1년에 2~3회 꽃이 피면서 약 2만 개의 망고를 생산하는데, 그 수입이 연간 약 3,000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마당에 큰 망고나무 한 그루만 있어도 최저생활비를 벌어들이는 셈이다. 아마도 다른 섬들보다 교통이 편리해서 적기에 망고를 출하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죽어가는 망고가 몰디브 주민들에게 얼마나 큰 경제적 타격을 주었는지 이해가 된다. 국내 제주도에서 1960년대 귤나무를 ‘대학나무’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귤값이 비싸서 자녀를 대학에 보낼 수 있었다는 뜻이다.
3주간의 여행을 마치고 우리 팀은 몰디브 국영 TV와 라디오에 출연하여 그동안의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나무를 살리기 위해서는 소금 농도가 낮은 우물물을 이용해 자주 물을 주고, 나무 밑의 흙을 야자 잎으로 덮어 될수록 소금의 상승을 막고, 죽은 가지의 제거는 우기까지 기다려 생존 여부를 가린 후 실시하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우리 팀이 농업 분야의 최초 국제조사단이어서 특별한 대접을 받았던 것 같다. 우리가 3월 말 몰디브를 떠난 후 5월 중순부터 우기가 시작되어 비가 상당히 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필자는 국제조사단의 단장으로서 같은 해 7월(우기)과 다음해 2월(건기)에 다시 몰디브를 찾아 같은 섬들을 다시 방문하여 나무의 피해 상태와 토양의 소금 잔류 상태를 추적했다. 우리가 수간주사를 놓았던 나무들조차 수개월 동안 지속된 건기로 인해 안타깝게 모두 죽어버렸다. 몰디브는 연간강우량이 1800~2200mm 정도 되는데, 쓰나미는 건기가 시작되는 2004년 12월에 들이닥쳤고, 2005년에는 예년보다 300mm 정도 비가 적게 내려 하늘의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열대지방의 나무들은 소금에 견디는 성질(내염성)에서 커다란 차이를 보여주었다. 구아바는 내염성이 전혀 없어 모두 죽었으며, 빵나무와 망고도 대부분 죽은 반면, 바나나는 초기에 지상부가 죽고 뿌리에서 새순이 돋아 회복되었다. 석류, 야자나무, 아레카넛은 약간의 피해를 입어 상당한 내염성을 보여주었으며, 코코넛과 바다 무궁화는 전혀 피해를 받지 않고 살아 있었다. 필자가 최초로 방문한 섬들과 관광지에 푸르른 숲이 남아 있어 깜짝 놀랐던 것은 바닷가에서 자라는 코코넛과 무궁화가 오랜 진화과정에서 잦은 쓰나미를 겪으면서 내염성을 가지고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인도양의 외딴 섬나라 몰디브 여행은 필자에게 자연의 섭리를 다시 한 번 깨닫는 귀중한 기회였다. 지구온난화가 가져올 재앙을 미리 경험하기도 했다. 몰디브의 순박하고 너그러운 원주민들과 세 달에 걸쳐 생활하면서 신앙 때문인지 항상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밝은 모습을 통해 우리 문명인들이 배울 점이 많다는 교훈을 얻게 된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