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야생 들국화를 재배, 육종하는 이재경 씨. 신지식임업인이기도 하다. |
|
.jpg) |
국야미소 |
|
.jpg) |
국야선녀 |
|
.jpg) |
국야도원 |
|
.jpg) |
국야순정 |
|
.jpg) |
국야청파 |
| |
들국화는 다른 야생화와 달리 봄에 심으면 그해 가을엔 꽃을 볼 수 있다. 꽃집에서 1년 내내 국화를 볼 수 있는 것처럼, 이제 들국화도 보다 오래 볼 수 있을 전망이다. 들국화 박사로 불리는 이재경 씨가 작고 소박하기만 한 들국화의 색과 모양, 피는 시기를 다양하게 만든 덕분이다. 한창 꽃대가 올라오는 봄날의 들국화농장 이야기다.
전시회, 분재 등 들국화 인기 대단
당연한 말이지만, 국화농장에는 꽃이 없다. 가을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야농원 이재경 씨는 꽃을 피워 올릴 꽃대를 키우느라 봄에 더 바쁘다.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에 위치한 국야농원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북한의 자생국화 수백 종이 모여 있는 곳이다. 5,610㎡의 비닐하우스에서 들국화를 키우고 있다. 이 중 4,290㎡(1,300평)은 신품종을 육종하는 연구포장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990㎡(300평)에는 농가에 분양할 들국화를 육묘한다. 생산농가와 소비자들에게 들국화를 알리기까지는 이재경 씨의 40여 년 노력이 있었다. “모르는 게 있으면 밤늦도록 책과 인터넷을 뒤졌고 관련기관이나 대학에도 수없이 찾아가 물어봤어요. 주말이면 야생 국화를 찾아 전국의 산과 들을 돌아다녔죠. 제주도, 거제도, 완도 등 이름 있는 섬은 기본이고 배를 빌려서 무인도까지 들어가기도 수차례, 백두산과 금강산도 몇 번씩 다녀왔으니까요.” 전국의 산야와 섬을 샅샅이 뒤져 채집한 들국화와 육종한 품종만 1,000여 종이 넘는다. 남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토종 들국화를 찾아냈을 뿐만 아니라, 그 재배법과 신품종을 연구했다.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2002년 산림청으로부터 신지식임업인으로 선정됐고, 개인육종가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수십 년간 들인 노력과 비교할 순 없겠지만, 이제는 소득도 상당하다. 화분이나 돌 등에 국화를 심어 꽃을 피우는 분재를 통해 연간 3~4,000만 원의 수익을 얻는다. 분재는 산과 들에서 자라는 들국화를 그대로 집 안에 옮겨 놓은 듯 자연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어 인기가 높다. 이보다 큰일은 전국적으로 열리는 들국화 전시회다. 작품 대여를 통해 얻는 수익이 가장 크다. 형형색색의 자생국화는 가을에 접어들면 경기 포천시 평강식물원, 강원 춘천시 화목원,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 등 전국 수십 곳의 식물원과 국화축제장 등으로 간다. “크고 화려한 국화에 가려졌던 들국화의 아름다움을 관람객들이 서서히 알더라고요. 들국화에 대한 향수로 찾아오는 분들이 늘면서, 이제는 국내 식물원들의 전시요청이 쇄도할 정도입니다.”
들국화의 재발견 하나, 색·모양 다양, 꽃 소비 자신 있어
이재경 씨의 농원에 들어서면, 형형색색의 이 많은 꽃들이 전부 들국화가 맞나싶다. 우리나라 들국화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농가부터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농장을 찾아오는 이가 셀 수 없을 정도다. 농가뿐만 아니라, 야생화 동호회, 일반인들 사이에서 그는 ‘들국화 박사’로 통한다. 야생화를 연구하는 임업인, 육종가로서도 최고로 꼽힌다. 2002년 산림청으로부터 신지식임업인으로 선정됐고, 강원지역 개인육종가협의회장으로 활동하는 것이 그 증거다. 그는 처음엔 외국산 국화에 밀려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들국화가 안타까워 연구하기 시작했다. 산이나 들에 깊숙이 숨겨진 보석 같은 품종을 찾아, 원석을 다듬듯이 연구·개발해 더 좋은 품종을 만들고 있다. 이재경 씨가 지금까지 육종한 신품종 계통이 수백 종에 달하고, 이 중 등록된 품종도 18품종이나 된다. ‘국야선녀’, ‘국야연풍’, ‘국야도원’, ‘국야백감’, ‘국야연가’, ‘국야청파’ 등 농장이름을 딴 신품종을 2007년부터 해마다 몇 품종씩 꾸준히 개발하고 있다. 색과 모양도 꽃집의 여느 꽃 못지않게 다양하다. 동시에 산과 들의 자연스러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대부분 늦여름부터 가을에 꽃을 피우지만, 점차 꽃을 볼 수 있는 기간도 길어지고 색과 모양이 다채로워지고 있다. 이재경 씨가 전국을 누비며 찾아내고 연구한 덕분이다. “그동안 개화기가 10월 중순 이후인 품종을 개발했는데, 최근엔 9월 20일이면 꽃이 펴 추석부터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품종을 등록했죠.” 개화 시기를 앞당기는 육종에 돌입한 것은 자생국화를 화단용부터 조경용까지 활용하려는 곳이 많아져서다. 가공·관광에 활용하는 사례도 늘어, 그동안 모아온 희귀한 자생국화류를 분양해 달라거나 하나뿐인 식물을 요청하는 경우도 생겼다. 재배농가에게 좋은 점이 또 있다. 좋은 품종인 동시에 첫 수확이 빠르다는 것이다. “야생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야생화를 재배하려는 농가가 늘고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야생화는 파종에서 꽃을 볼 때까지 4~5년이 걸려요.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로 도전하기가 쉽지 않죠. 산이나 들에서 자라는 다른 야생화와 달리, 들국화는 재배기간이 짧아요. 봄에 심으면 가을에 꽃을 볼 수 있으니 농가 부담이 적죠.”
들국화의 재발견 둘, 흰색 꽃 속에 치매 예방 효과
국화과 식물은 전 세계에 2만 5,000여 종, 우리나라에도 380여 종이 산다. 흔히 보는 코스모스·해바라기·쑥·민들레는 물론, 개미취·미역취·씀바귀·고들빼기·곤드레나물 등 전혀 연관성 없어 보이는 작물까지 모두 국화과 식물이다. 흔히들 들국화라 부르는 자생국화는 야생에서 자라는 국화 종류를 총칭하는 말이다.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 감국이다. “들국화 하면 연상되는 노란색의 작은 꽃이 감국인데, 이것도 생각보다 다양해요. 꽃도 크고 작고, 흰색과 노란색 등 제 농장에 옮겨 심은 품종만도 7가지나 돼요.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흰색 감국을 발견해 심어 놓았죠. 이렇게 들국화의 다양성을 밝혀내 알리는 일은, 들국화의 유통·소비시장을 넓혀 생산농가에게 도움 되는 일입니다.” 이재경 씨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들국화의 효능이다. 말로만 전해오던 감국의 폐암·아토피 치료 효과, 치매 예방 효과 등을 의학적으로 증명해, 들국화의 효용가치와 소비시장을 넓힐 수 있어서다. 이런 좋은 성분은 흰색 감국에 특히 많이 들어 있다. 한림대 의대 원무호 교수팀은 이씨의 들국화를 가지고 약리 규명을 위한 실험을 했다. 치매 치료와 기억력 증진, 노화방지, 뇌졸중 예방에 효과가 있는 기능성 물질이 함유된 들국화를 이용해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서였다. 연구성과는 최근 밝혀졌다. 흰색 감국의 치매 완화 효과가 입증된 것. 치매의 원인 중 하나로 아세틸콜린의 기능저하를 꼽는데, 아세틸콜린의 기능저하를 유도하는 아세틸콜린에스터라아제 활성에 흰색 감국이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연구결과, 미국 FDA에서 승인받은 항 치매제와 비교할 때, 가장 활성이 우수한 것이 흰색 감국의 꽃으로 나타났다. “5~6년 전만 해도 자생국화에 대해 학계나 연구계통에서 관심이 없었는데, 지금은 여기저기서 공동연구 제안이 많이 들어옵니다. 우리 고유의 자생국화이자 유망한 산림작물인 들국화의 가치를 알아보는 것이지요. 이제는 가공가치가 높이 평가받잖아요. 식품가공은 물론이고, 의약품의 천연원료로 주목받고 있으니 고부가가치 작물이라 할 만하지요.”
들국화의 재발견 셋, 국수·음료 등 식품 가능성 높아
이뿐만이 아니다. 들국화의 다양한 약리 효과와 은은한 향은 음료수, 차(茶), 요구르트, 향수, 껌에 첨가해 가공된다. 말린 들국화꽃은 베개 속으로 넣기도 하는데, 수험생의 기억력 증진과 숙면에 효과가 있다. 감국을 국수, 음료에 활용하는 방법을 개발해, 특허신청도 했다. 국화차 원료 품종 중 최고로 꼽히는 감국은 꽃이 작고 꽃 수도 적어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앞으로 크고 많은 꽃이 달리는 품종을 개발할 생각이다. “들국화는 질리지 않아 관상용으로도 훌륭하지만 나물로 무쳐 먹거나 차로 가공해서 마시는 등 2·3차 산업으로 재생산이 가능합니다. 잎을 설탕에 재워 발효해 꽃이 나오기 전 봄에 차로 마시고, 가을에는 국화를 감상한 뒤 역시 국화차를 마시면 일품이지요.” 현재 들국화 재배농가 중 80% 이상이 식용·약용 등 가공용으로 출하하는데, 시장성이 점점 더 높아질 거란 전망이다. 나머지 20%는 순수 경관용으로 재배하고 있다. 이 또한 새롭게 열리는 시장이다.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수집한 들국화는 그 다양성과 개성으로 곳곳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해국은 서해안과 동해안에서 모두 자라는데 지역별로 잎 모양이 다르다는 것도 알아냈다. 작고 통통한 잎에 털이 나 있는 것은 거제도에서 자라는 해국이고, 울릉도에서 자라는 해국은 잎이 길쭉한 모양이다. 진도의 해국 잎은 촘촘하면서 뾰족했다. 그의 노력으로 해국은 잎만으로도 관상가치가 높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해안이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도로변 화단 화훼로 활용하고 있다. 3차 산업인 경관농업은 농가소득과도 연결된다. 현재 그의 자료·연구를 바탕으로 농림수산식품부를 비롯해 안동대학교 등 여러 기관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연구하고 있다. 춘천 호반길을 따라 심어져 있는 자생국화도 이씨가 춘천시에 제공해 호평을 받았다. “절화 또는 분화생산의 1차 산업, 식품과 의약품 원료로서의 2차 산업, 조경재료 또는 관광산업과 연계한 3차 산업까지 작고 소박한 들국화의 가치는 그 어떤 것보다 무궁무진합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울었다는 시 구절처럼, 올가을 활짝 핀 들국화를 위해 봄부터 이재경 씨는 즐겁게 바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