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관하여/나무

나무와 배수

강토백오 2011. 11. 27. 21:05

홍수 및 배수불량과 나무의 건강
글·사진 / 이경준 (서울대학교 산림과학부 명예교수)
호숫가에서 자라던 나무들이 홍수로 인해 물에 잠겨죽은 후 나무들을 베어낸 광경
강변에서 자라는 버드나무가 세 번의 홍수가 날 때마다 흙이 덮여 새 뿌리를 세 번 만든 모습
건강한 뿌리(A, B)는 밝은 색을 띠고 있으며 껍질이 붙어 있는 반면, 과습으로 죽은 뿌리(C)는 껍질이 벗겨진다.
묘포장에서 잣나무의 뿌리가 과습으로 죽어가는 모습. 뿌리와 토양의 색깔이 검은색으로 변해 있으며 일부 뿌리껍질이 벗겨져 있다.
나무가 자라던 곳에서 장기간 침수로 인해 나무들이 죽은 모습

2011년은 참으로 기상이변의 해다. 지난 1월에는 전국에 걸쳐 최저 기온이 매일 영하 10℃ 이하로 떨어져 30여 년 만의 추위로 기록되면서 추위에 약한 동백나무, 영산홍, 배롱나무 들이 많이 얼어 죽었다. 6월 중순에 시작된 장마는 7월 중에 끝났지만, 연이어 8월 하순까지 쉬지 않고 비가 내렸다. 금년 1월부터 8월 22일까지 서울 지역에 총 1,320mm의 강우량을 기록해서 연평균 강우량에 해당하는 비가 8개월 사이에 내린 셈이다.
태풍이 9월에도 올라온다고 하니 앞으로도 상당히 많은 비가 더 올 것 같다. 얼마 전에 기청제(祈淸祭)를 드렸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기우제가 아닌 기청제는 일제강점기에 한 번 올린 적이 있었다고 하니까 이번 엄청난 비는 한 세기에 한 번 있을 법한 기상이변인 듯하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지구가 미쳐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번에 두 달간 지속된 장마 아닌 장마로 인해 홍수와 산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인명피해도 상당히 있었다. 홍수(洪水)는 나무에게 어떤 피해를 줄까? 홍수로 어떤 지역이 침수될 때 나무에게 피해를 주는 정도는 침수된 기간에 달려 있다. 벼농사의 경우에는 침수된 논에서 3일 이내에 물이 빠지면 벼 생육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키 큰 나무의 경우에는 피해를 주지 않는 기간을 보통 5~6일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짧은 기간의 홍수는 나무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위와 같은 특성을 이용해 조림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 1950년대 이태리포플러를 도입해 개량에 성공했다. 이 나무는 습기와 양분이 있는 곳에서는 1년에 3m 이상 자라는 대표적인 속성수다. 당시 정부의 적극적인 권장으로 농민들이 하천변에 많이 심었다. 하천변의 땅은 홍수가 나면 물에 잠기기 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 없어 방치되어 있었지만, 물이 보통 5일 이내로 빠지기 때문에 나무를 심을 수 있었다. 이런 지역에 이태리포플러를 심어 15년 후에 수확하여 마을 사람들이 많은 소득을 올렸으며, ‘포플러장학금’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의 등록금을 보조해주었다.
1980년대 들어서 하천변에 심은 나무들이 홍수 때 물빠짐을 방해해서 홍수 피해가 커진다는 주민들의 건의가 있었다. 결국 하천법이 개정되면서 조림이 전면 중단되었다. 그 이후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한강 개발이 이루어져 한강공원이 여기저기 만들어졌지만 같은 이유로 둔치에 나무를 전혀 심지 못했다. 그러나 필자를 비롯한 나무 전문가들의 건의에 힘입어 이제는 홍수에 물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로 드문드문 나무를 심고 있다. 혹시 홍수로 진흙이 대량으로 쌓이면 뿌리 호흡이 나빠지지만 버드나무류는 새 뿌리를 내려 잘 견딘다.
배수불량(排水不良)은 지하수위가 너무 높아서 물이 밑으로 빠져 나가지 못하거나, 지대가 낮아서 물이 고이거나, 진흙이 많은 점질 토양에서 자주 발생한다. 이로 인해 토양이 과습(過濕) 상태로 되며, 기간이 길어지면 나무뿌리에 피해를 준다.
토양이 과습 상태로 되는 것은 토양 입자의 크기와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토양 입자의 크기는 진흙의 경우 0.002mm 미만이어서 박테리아보다 작은 셈이다. 미사는 직경이 0.002~0.02mm, 모래는 0.02~2.0mm이다. 토양 입자와 입자 사이에는 공극이 있으며, 이 공극을 물과 공기가 상호보완적으로 채우고 있다. 즉 공극에서 수분이 없어진 만큼 공기가 대신 채워지며, 수분으로 채워진 만큼 공기가 줄어든다. 모래 토양의 경우 공극이 매우 커서 수분이 쉽게 밑으로 빠져나가서 배수가 잘 되고 토양이 쉽게 건조해진다. 반면 진흙이 많은 토양은 공극이 작아서 수분이 밑으로 빠져나가지 못해 배수불량으로 과습 상태가 된다.
뿌리는 물을 흡수하므로 토양 중에 물이 많을수록 뿌리가 물을 많이 빨아들일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뿌리는 쉬지 않고 새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잎과 마찬가지로 호흡을 왕성하게 하기 때문에 산소를 필요로 한다. 산소는 공기 속에 들어 있으므로, 토양 중에는 공기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토양 중에 수분과 공기가 알맞은 비율로 함께 있어야 뿌리가 제 기능을 한다. 토양 중에 수분이 너무 많으면 산소 부족으로 인하여 뿌리가 자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수분을 흡수할 수 없게 된다.
어떤 지역이 배수불량인가를 판단하는 방법은 비교적 쉽다. 1m 깊이의 웅덩이를 미리 파 놓았다가 비가 많이 온 후 5일이 지나도록 웅덩이에 물이 고여 있으면 배수가 불량하다고 할 수 있다. 1m 깊이는 교목의 뿌리가 내려가야 하는 최소한의 토양 깊이에 해당하며, 5일은 앞에서 언급한 홍수 때 뿌리가 피해를 입지 않는 기간과 같다.
과습으로 인해 생기는 초기 증상은 잎자루가 누렇게 변하면서 아래로 처지는 현상이다. 이것은 뿌리에서 산소 부족으로 인하여 에틸렌 가스가 생산되어 잎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잎의 뒷면에 검은색의 물혹이 생기기도 한다. 과습이 장기간 진행되면 잎이 작아지고, 반점이 생기면서 누렇게 변하고, 가지 생장이 둔화된다. 더 진행되면 잎이 마르고 어린 가지가 고사하여 나무 꼭대기부터 밑으로 내려가면서 가지가 죽기 시작하여 수관이 축소된다.
잎이 누렇게 변하거나 반점이 생기고 가지가 죽는 현상은 여러 가지 환경적 혹은 인위적 원인으로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과습으로 진단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과습 상태를 진단하는 가장 쉬우면서 확실한 방법은 토양과 뿌리의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다. 과습 지역은 진흙이 많은 토양으로서 비가 온 후 일주일이 경과해도 흙에 수분이 많이 남아 있고, 토양 표면에 연중 이끼가 자라고 있거나, 흙이 검은색으로 변해 있으면서 황화수소(H₂S) 혹은 유황 냄새가 난다.
과습 상태를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증상은 뿌리의 가시적 변화이다. 과습 상태가 지속되면 잎보다 뿌리에서 먼저 변화가 나타난다. 산소 공급이 잘 되고 토양 수분이 적절한 수준에 있을 때 건강한 뿌리는 나무의 종류나 뿌리의 굵기에 관계없이 밝고 옅은 색을 띠고 있다. 토양이 과습해지면 산소 부족으로 인하여 환원반응이 일어나서 뿌리가 검은색으로 변하며, 더 진행되면 뿌리의 껍질이 벗겨진다. 죽은 뿌리는 뿌리를 손끝으로 잡아당길 때 껍질이 힘없이 벗겨지며, 이것이 과습을 진단하는 확실한 단서가 된다.
과습에 견디는 능력은 수종에 따라서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활엽수가 침엽수보다 습한 토양에서 견디는 힘이 큰 편이다. 소나무는 과습에 매우 약하다. 낙우송은 예외적으로 침수에 강한 침엽수인데, 원산지인 미국의 미시시피 강 주변의 홍수 지역에서 자라며, 수면 위로 굵은 뿌리를 올려 보내 숨을 쉰다. 활엽수 중에서는 버드나무류, 오리나무류, 포플러류, 물푸레나무, 플라타너스가 저항성이 있다. 버드나무는 빈번하게 홍수가 발생하는 하천, 강변, 댐 주변에서 자랄 수 있는 예외적인 수종이다. 뿌리가 물에 잠겨 산소가 부족한 상태에서도 뿌리 호흡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때문이다.
과습 상태를 극복하는 방법에는 제한적이지만 몇 가지가 있다. 낮은 지역은 흙으로 성토(盛土)한 후 심거나, 나무를 심을 곳만 흙을 쌓아 상식(上植)을 시도한다. 배수를 철저하게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며 노출된 도랑을 파거나 땅속 깊이 보이지 않는 도랑(암거 배수)을 설치하여 밖으로 물을 빼거나 집수구를 설치한다. 혹은 굵은 모래를 섞어준다.
과습은 건조 못지않게 나무 생장에 치명적인 피해를 준다. 천연기념물 노거수로 지정된 나무 중에서 서울 원효로의 백송과 경북 문경시 존도리의 소나무는 인위적으로 환경이 바뀌어 과습으로 죽은 대표적인 예이다. 그리고 과습한 토양에서는 겨울철 추위에 땅이 얼면서 어린나무의 뿌리가 얼어 죽는 일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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