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먼 길을 돌아서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혼이 담긴 영산(靈山)이다. 민족의 얼이 서린 백두산 천지를 직접 보고 싶은 심정은 누군들 없으랴. 생각 끝에 나는 중국을 통해서라도 백두산을 가기로 했다. 남북통일이 되면 북한을 통해 가는 길도 있지만 그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 없었다. 하루 속히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우리 일행은 북경시 주변 관광을 마치고 북경역(北京驛)에서 고속 열차를 탔다. 시속 240km로 달리는 열차는 6시간 남짓 달려 길림성 장춘역(長春驛)에 도착했다. 그때가 오후 1시 30분. 대기하고 있던 관광버스를 타고 놋날처럼 쏟아지는 빗속을 달려 백두산 가까이에 있는 백산시(白山市)에서 1박을 하고 이튿날 아침 10시에 연길시 송강진(松江眞)에 도착했다. 아침식사를 하고 서둘러 백두산 아래 첫 동네인 이도백하(貽道百河) 마을로 향했다. 가로변에는 백두산을 알리는 간판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다. 자작나무를 비롯해 이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수종들과 식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특히 대나무처럼 자란 자작나무는 흰 물감을 칠한 듯 하얀 수피 색깔이 어두침침한 숲 내를 환하게 밝혀주는 듯했다. 백두산 자락의 산림은 평지림이었다. 용암이 흘러 만들어진 지형의 특성인 듯하다. 울창한 숲 내로 간밤에 쏟아진 폭우가 탕약을 달여낸 듯한 짙은 갈색의 빗물로 움푹 파인 곳으로 흘러들고 있다. 낙엽이 썩어 우러난 물인 것 같다. 나무도 저렇게 보약을 먹으니 잘 자랄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고산지역의 날씨는 예측할 수 없다. 아침식사를 할 때만도 안개가 끼어 우리들 마음을 초조하게 하던 날씨가 백두산을 향해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울창한 숲으로 싸여 있는 길은 한가로웠다. 한라산은 노루 천국인데 백두산은 멧돼지 천국인가 보다. 가로변을 따라 새끼를 데리고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자연 속의 평화로움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드디어 도로표지판에 우리가 오르고자 하는 백두산 북경구(北景區)가 32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표지판을 지나 도착한 곳이 이도백하 마을이다. 연길시 조선족 자치구이기 때문에 조선족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한국인 관광객을 배려하는 차원인지 한글 간판도 많이 보인다. 우리는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아직도 30여 km가 남았으니 40분가량은 더 가야 될 것 같다. 날씨는 좋지만 또 어떻게 변할지 몰라 바쁘게 움직였다. 멀고도 먼 길이었다. 차창 너머로 백두산 입구라는 큰 간판이 보인다. 우리가 타고 온 관광버스는 여기가 종점이다. 주차장에 버스를 주차시키고 셔틀버스로 백두산 툰드라 지역까지 이동했다. 이곳에서 다시 십여 명씩 승합차로 바꿔 타고 굽이굽이 돌아 툰드라 지역을 통과해 해발 2,400m의 고지까지 올라 보니 오후 2시였다. 장춘역에서 여기까지 꼬박 하루가 걸린 셈이다. 피로가 쌓일 만도 한데 그런 기색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고 얼굴에는 모두들 화색이 감돌았다.
백두산 정기를 온몸에 받으면서
백두산은 상상했던 대로 장엄한 모습이었다. 멀리 보이는 장군봉을 비롯하여 16봉우리가 구름 한 점 없이 태곳적 그 모습을 낱낱이 드러내 보였다. 1년 중 백두산을 가장 잘 볼 수 있다는 7, 8월은 백두산을 찾아오는 관광객이 가장 많은 때다. 그러나 이 시기는 우기와 겹쳐 백두산 정상에 서도 백두의 모습을 제대로 보고 가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한다. 우리가 여기까지 온 과정을 생각해 보아도 그렇다. 당초 계획된 등정시간은 오전 10시였으나 이곳까지 오는 과정에서 4시간이 지연되어 지금 시간에 오르게 된 것이다. 백두산의 비경을 볼 수 있는 운명의 시간을 산신령께서 정해주신 것 같다. 오전에 올랐던 사람들은 안개 때문에 천지를 보지 못하고 하산했다고 한다. 고산의 기후는 시시각각으로 변하기 때문에 백두산을 오른다고 누구나 천지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우리의 기분을 맞춰 주느라 안내양은 한껏 고무된 말로 우리 팀을 추켜세운다. 한눈에 들어오는 쪽빛 천지는 우리 민족이 가슴에 담고 있는 성스러운 호수요, 천상의 호수였다. 그 어떤 말로도 형언하기 어려운 고요한 자태는 대자연의 경외감 그 자체였다. 나는 티 하나 없는 저 푸른 물결을 보며 마치 그 옛날에 할머니가 장독 위에 정화수를 떠 놓고 집안의 길운을 비셨던 그 정성 그 모습대로 가족의 행복과 남북통일을 기원하며 합장했다.
백두산의 산림대를 한눈에 보면서
백두산을 정점으로 펼쳐진 산림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정상까지 오면서 다양한 숲을 차창 너머로 보았지만 정상에서 북방한대림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온통 만주벌판을 다 덮은 듯한 산림은 장관이었다. 백두산은 2,200고지부터 툰드라 지대가 시작되는 것 같다. 스위스 알프스를 오를 때 해발 2,300m에서 수목한계선이 형성되는 것을 보았는데 백두산 역시 그 고도에서 사스레나무가 수목한계선을 이루고 있다. 보지 않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던 사실이다. 알프스에서는 가문비나무와 잎깔나무가 수목한계지역에 자생하고 있어 백두산도 그렇지 않을까 상상했으나 빗나가고 말았다. 이런 것을 가리켜 ‘백문이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이라고 하는가 보다. 오늘 이 한 가지만 머리에 넣어도 소중한 체험을 하는 것이다. 수목한계지역의 사스레나무는 몇 년이나 견디어 왔는지 그 모습이 만고풍상을 다 겪은 듯 보인다. 모든 환경여건이 최악이었을 테니 얼마나 고된 삶을 살아왔을까 하는 가엾은 생각마저 든다. 수목한계지역을 벗어난 툰드라 지역에는 많은 야생화들이 꽃을 피우고 있다. 고산식물 대부분이 짧은 생육기간에 꽃을 피우고 씨를 퍼트려야 종족을 유지할 수 있으니 그 아우성은 대단했다. 요즈음이 황새풀의 개화 적기인 모양이다. 멀리서 보니 마치 초겨울에 눈발처럼 꽃잎이 날리는 것 같다. 꽃잎이 날리고 종자가 탱탱하게 영글 때 툰드라의 생명은 이어질 것이다. 툰드라 지역을 뒤로하고 하산하는 길에 침엽수림대에서 종비나무와 잎깔나무 그리고 가문비나무가 왕성하게 자라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나라 한대림의 대표 수종들이다. 해발이 낮아질수록 활엽수림대가 풍요롭게 숲을 형성하고 있다. 많은 수종들이 눈에 들어오지만 자작나무와 잎깔나무는 한반도 남쪽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수종들이기에 더 관심이 간다. 백두산 천지를 본 것도 행운이었지만 백두산에서 평소 우리 주변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수종들을 보았다는 것 또한 소중한 수확이다. 어느덧 숲 속으로 저녁 해가 넘어가고 있다. 이틀 동안 드라마틱했던 일정을 조용히 정리하면서 다음엔 북한을 통해서 갈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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