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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승주 씨는 우수한 참당귀 품종을 개발한 개인 육종가이자, 지역 내 당귀 생산·유통조직의 대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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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당귀종자. 함씨가 육종한 국산 당귀 종자. 길쭉한 일본당귀 품종과 달리 동그랗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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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귀는 종자를 받아서 수확하기까지 4~5년이 걸린다.우량한 종자를 1년간 재배한 어린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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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귀–함씨가 수확한 당귀를 들어 보이고 있다. 주 뿌리가 굵을수록 품질 좋은 당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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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당귀밭. 어린잎일 때는 나물로 무쳐 먹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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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경 수확한 당귀는 일주일 이상 밭에 두고 자연건조 시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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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를 쓰는 당귀는 무게가 상당하므로 포크레인 등에 실어서 건조장으로 옮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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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로 지어놓은 건조장에서 지역 내 당귀작목반 농가들이 수확한 당귀를 모아 건조, 포장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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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한약재 유통량도 덩달아 늘고 있다. 가정에서 약초를 차나 음료, 술로 담가 먹는 경우도 늘었다. 하지만 약효가 뛰어나면서 믿을 수 있는 국산 약초를 구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소비자에게 좋은 동시에, 농가재배가 수월하고 소득까지 높여준다면 더할 나위 없는 희소식일 터. 강원도 평창 당귀농가 함승주 씨는 국내에서 3번째로 많이 쓰이는 당귀의 추대율(웃자람비율)을 확 줄인 우량 품종 ‘영흥당귀’를 육종했다. 그래서 믿을 만한 국산 당귀를 볼 기회가 많아졌다.
“가능한 많이 수확해보자”는 고민에서 시작
함씨가 당귀농사를 짓는 강원도 평창군은 전국 당귀 생산량의 50%를 차지하는 지역이다. 이곳에서 당귀는 감자나 옥수수 같은 자생작물이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 추대(웃자람)현상이 나타나면서 재배농가 모두가 고민에 빠졌다. “당귀는 추대가 되면 뿌리가 목질화돼 약재로 쓸 수 없는데, 이런 문제가 몇 년째 계속됐어요. 제 밭의 절반 이상에서 추대가 나타났고 농사를 포기해야 할 정도로 심각했어요. 다른 농가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죠. 우선은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농촌진흥청 등 관련기관을 쫓아다니기 시작했어요.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했지만, 당귀의 특성에 대해 자문을 들으면서 내가 직접 품종을 찾아보자 마음먹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산에 있는 야생 당귀 종자를 심으면 추대가 안 된다는 소문에 농가들이 너도나도 산당귀를 구하러 다녔다. 한창 바쁜 봄에 종자를 구하러 다녀야 해서 일손도 부족해지고, 산도 훼손됐다. 종자를 구하지 못한 농가들은 돈을 주고 사야 하니 산당귀 종자 1말에 50만 원까지 값이 올랐다. 하지만 야생 당귀 종자는 추대가 안 되는 대신 밭에 적응을 못해서 병충해에 취약해 수확량이 적었다. 그래서 높은 산에서 채취한 자연산 참당귀 종자를 구해서 밭에 적응하도록 만들자 생각했다. 야생 종자가 자라는 곳과 비슷하게 해발 700m 이상 지역에 채종포를 만들었다. 여기서 채종해야 다른 종자와 섞이지 않아 품질이 균일하고 순도 높은 종자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채종포를 갖추다보니 망실까지 만들기는 어려웠지만, 다른 농가와 최소 2km는 떨어진 곳으로 골랐어요. 또 추대되면 태풍에 쓰러지기가 쉬우니, 여기에 대비하기 위해서 분지 형태의 오목한 지형을 찾아다녔죠. 여기저기 다니면서 땅주인의 양해를 구한 뒤에야 실험할 수 있었습니다.” 1년 동안 야생 산당귀를 재배한 뒤, 수확해서 소득을 올리는 대신 겨울을 보낸 뒤 종자를 얻었다. 얻은 종자를 다른 땅에 심어서 우량 계통을 찾아내는 데 2년이 더 걸렸다. 찾아낸 우량 계통은 어린묘로 키워냈고, 1년이 더 지나서 당귀를 수확할 수 있었다. 이런 연구를 수차례 반복하며 10년을 보냈다.
영흥당귀, 추대율을 확 줄인 효자 품종
산당귀는 추대율이 낮은 대신 병충해, 생리장해에는 약하다. 이에 비해 일반 재래종은 추대율이 높고, 이 현상이 해마다 심해진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산에서 난 종자는 4~5년 가도 추대가 생기지 않는데, 밭에서 채취한 종자는 2년 만에 추대가 올라왔어요. 이 둘을 교배해 F1 계통을 만든 뒤, 3% 미만만 추대되는 우량 계통을 골라서 다시 추대되는 정도를 확인했습니다. 재배시험한 지 3년 뒤 나온 계통에서 세력·내병성이 다 좋은 걸 확인할 수 있었어요. 드디어 추대도 덜 되고 병충해에도 강한 품종을 찾아냈죠.” 그렇게 해서 추대를 잡는 데 성공했다. ‘영흥당귀’로 이름 붙여진 이 품종은 추대율 5% 미만에 병충해에도 강한 품종. 추대율이 30%만 안 넘어도 좋겠다던 당시 농가들에겐 진정 희소식이었다. 함씨는 이 품종개발로 2007년 대한민국농업과학기술상 국무총리상을 수상하고, 2008년 신지식농업인에 선정됐다.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있었지만, 처음 시험재배 할 때 마음을 잃지 않고 농가들에게 무상으로 채종기술을 알려줬다. 하지만 얼마 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악의적인 몇몇 사람들이 이 품종을 중국으로 가져가서 재배해, 국내로 역수입한 것이다. 5년근 인삼 가격만큼 높았던 당귀 가격은 크게 떨어졌고, 일부 당귀 농가들에게선 원망도 들어야 했다. “처음에는 나나 다른 농가들에게 좋으면 됐지 하는 생각에 품종등록까진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걸 악용할 줄은 몰랐어요. 품종등록을 하지 않으면 이 품종이 중국으로 가서 중국 품종으로 둔갑할 수도 있고, 그렇게 재배된 당귀가 수입되면 애써서 국산 품종을 육성한 보람이 없을 것이라는 주변 얘기에 뒤늦게 지난해 품종등록을 신청했습니다.” ‘영흥당귀’가 탄생함으로써 국내 당귀 재배농가들은 안정적인 수량을 확보하게 됐고, 한약재 유통과 소비에 있어서도 국산 당귀가 당당히 자리를 차지할 전망이다.
수확철이면 국산 당귀 주문전화 쇄도
당귀는 4월경 1평에 20포기 정도씩 심어 10월 말 수확한다. 거름기가 많은 토양에서 잘 자란다. 뿌리에 유효성분이 많은데 뿌리가 굵고 튼실하니 제대로 함량이 나온다. 몸통이 굵고 발이 짧을수록 고품질이다. 노란색을 띠는 흙에서 키우면 노란빛이고, 진흙에서 재배하면 검은빛을 띠지만 품질이나 효용 면에서 차이가 없다. 당귀 생산비에서 가장 크게 차지하는 것은 농약, 비닐 같은 자재비가 아니라 토양임대비용과 인건비다 당귀는 미나리과 식물이라 물 빠짐이 좋은 밭에 키워야 한다. 모종을 구입한다 해도 모종밭과 본밭을 나눠 2년은 키워야 하므로 해마다 관수시설을 뽑아서 다시 깔아줘야 한다. “당귀는 채종에서 수확까지 5년이 걸리는데 해마다 다른 포장에서 재배해야 합니다. 우량 품종을 받기까지 3년이 걸리고, 모종을 받아서 정식해서 키우는 데 1년, 이걸 옮겨 수확밭에서 키우는 데 1년이 더 걸리죠. 수확 밭에서만 키우려고 모종을 사서 쓰는 농가도 있지만, 그래도 2년이 걸려요. 자금회수에 기간이 길고, 수확과 건조, 절단에 인건비도 꽤 들기 때문에 수량과 품질이 좋은 우량 품종이 중요한 거겠죠.” 재배할 때는 점무늬응애와 잿빛곰팡이병만 조심하면 된다. 이것도 ‘영흥당귀’ 품종는 재래종보다 두껍고 뻣뻣해서 벌레가 침입하기 어렵고 병에도 잘 견디는 장점이 있다. 보통 5~6번 농약방제를 하지만, 영흥당귀는 2번이면 충분하고 무농약 재배농가도 많다. 함씨가 채종과 육묘과정을 아낌없이 공개한 덕분이다. 기온이 20~25℃일 때 종자를 채종하고, 종자 간 거리를 0.7~1m로 유지해 심은 뒤, 3마디 정도가 올라온 다음 원대를 쳐내면 된다. 이 방법으로 하면 종자 수확량을 20% 늘릴 수 있다. 1평에서 당귀를 재배해 건조하면 1kg 정도 나온다. 함씨가 주축이 된 진부 GAP당귀작목반에서 생산하는 양은 100t 이상. 모두 전량 계약재배 한다. 생산량 중 50t은 ㈜한국인삼공사로 공급되고, 함소아한의원, 자생한방병원 등 전국에 체인을 가지고 있는 유명 한의원과 한방병원으로 들어간다. 서울 경동시장 같은 약재 도매시장에서는 구할 수조차 없는 특품 한약재다. 국산 당귀의 시장성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한약재 소비가 거의 전부일 거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식품과 화장품에 쓰이는 비율이 50%나 됩니다. 연구기관에 따르면 당귀에는 면역능력을 조절하는 효과가 있어, 화장품업체인 한국콜마와 (주)썬바이오텍에 50t이 공급돼 건강보조식품 원료로 쓰여요. 생산된 건강보조식품은 70%가 해외로 수출되고 있습니다.”
강활·백지 등 다른 한약재 국산화도 머지않아
“약초육종은 10년 이상 연구해서 한 품종 나오는 정도입니다. 게다가 농산물이기도 하지만 의약품의 원료로 쓰니까 약초육종을 할 때는 유효성분을 생각해야 합니다. 당귀로 예를 들면 데쿠르신, 데쿠르시놀 등의 성분이 몇 % 이상 들어 있어야 한다는 기준이 엄격해요. GMO 처리도 당연히 안 되죠. 하지만 어려운 만큼 보람도 큽니다.” 국내 한약재 유통량 3위인 당귀는 중국 등지에서 수입된다. 당귀뿐 아니라 대다수 한약재가 그렇다. 하지만 향후 5년간 중국의 인건비는 2배가량 오른다니, 중국산의 가격경쟁력도 약해질 전망이다. 식품에서조차 중요성이 강조되는 안전문제는 의약품에선 두말할 것 없이 중요한 만큼, 고품질 국산 한약재 시장은 충분히 유망하다. ‘영흥당귀’가 반가운 건 농가만이 아니다. “지금 생산되는 당귀는 없어서 못 파는 정도예요. 계약재배를 통해 작목반에서 공동출하하고 있지만, 수확철이 되면 농가들한테 오는 주문전화가 상당하죠. 내년에 판매할 당귀 재배계약을 요즘 하는데, 하루에도 수십 통씩 전화가 옵니다. 다른 한약재를 추가재배 해달라는 요청도 끊이지 않고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육종목표를 정했다. 영흥당귀를 육종한 기술을 다른 한약재에도 적용해볼 생각이다. 강활, 백지, 일당귀 등의 한약재다. 강활은 신경통과 독감에 효능이 있고, 백지는 진통과 지혈 효과가 있어 100% 의약품에 사용된다. 일본 당귀를 일컫는 일당귀는 일본에서 향신료로 사용되므로, 우량품종을 육성해 재배하면 수출길을 열 수 있다. “이들 약초는 당귀처럼 추대가 올라오면 뿌리가 목질화되는 작물이에요. 이 작물들도 뿌리를 한약재로 쓰니까 영흥당귀를 육종한 방법을 응용하면 뿌리 품질이 뛰어난 상품의 대량생산이 가능할 거라 생각합니다.” IT만큼 중요한 것이 BT다. 의약품과 에너지산업이 고부가가치 첨단산업임에는 다들 공감하면서도 여기에 원료가 되는 천연물인 농산물에 대해서는 신경을 덜 쓰고 있다. ‘영흥당귀’가 국산 당귀 시장을 새롭게 연 데 이어, 또 다른 한약재의 국산화를 기대해도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