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참숯

35년 참숯 외길 노수산 씨

강토백오 2011. 11. 27. 22:47

35년 참숯 외길 노수산 씨
글 . 사진 / 김소영 (농민신문 기자)
노수산 씨의 숯은 100% 참나무로 만든 것으로 인기가 좋다.
목초액은 숯을 굽는 과정에서 나오는 연기를 냉각해 액체 상태로 만들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파이프 밑에 괴어놓은 통에 목초액이 한 방울씩 모이고 있다.
30년 넘게 숯가마를 때고 있는 노수산 씨의 숯가마.
숯을 향한 열정은 대를 이어 계속된다. 노수산 씨와 아들 승천 씨.
모두 6개인 노 씨의 숯가마 중 5개는 현재 가동을 멈춘 상태다. 관련 법규 개정으로 논 지역에선 숯을 굽지 못하게 되면서부터다.
노 씨의 숯가마 어귀에는 큰 입간판이 서 있다.

숯이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아기를 낳으면 대문에 걸어두던 금줄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까만 간장 위에 동동 떠 있던 숯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밤이나 고구마를 맛있게 익혀주던 화로 속의 숯도 생각날 것이다. 예부터 우리 민족의 일상생활에 두루 활용된 친근한 존재인 숯. 그러한 숯을 35년째 묵묵히 구워내고 있는 뚝심의 임업인이 있다. 노수산(76세ㆍ경기 안성시 보개면 북가현리) 씨가 그 주인공이다.



참숯을 닮은 참임업인

연초 중부 지방을 강타한 폭설이 채 녹지 않은 1월 중순, 쌓인 눈을 헤치고 찾아간 노수산 씨의 숯가마는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굴뚝 연기로 멀리서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알싸하게 매서운 추위 속 하얀 연기는 자못 목가적이었고, 그런 연기를 말없이 바라보는 노 씨의 얼굴은 편안했다.
“숯을 구운 지 35년이 넘어요.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만 봐도 가마 속 불 상태가 어떤지 바로 알 수 있지요. 숯을 굽는 데 인생을 다 보냈네요, 허허”
사실 노 씨의 숯가마는 숯 업계에선 유명하다. 오랜 기간 축적된 기술력으로 생산한 그의 숯 제품을 고정적으로 구입해가는 사람들에서부터, 숯가마를 한번 해보겠노라며 기초 지식을 배우려는 초보 임업인까지 그의 숯가마를 다녀간 발길은 수없이 많다.
다른 숯가마와 차별되는 노 씨만의 경쟁력은 순도 100%의 ‘진짜 참숯’에 있다. 숯은 물푸레나무.박달나무 등 다양한 나무로 만들 수 있지만 참나무숯, 즉 참숯을 최고로 친다. 하지만 참나무는 구하기 쉽지 않아 일부 지역에선 잡목을 섞어 쓰기도 한다.
하지만 노 씨는 100% 참나무만을 고집한다. 마음에드는 참나무를 얻기 위해 인근 야산에 수백 그루를 직접 조림해 일정 기간 키운 뒤 베어다 쓴다. 숯가마 하나에 들어가는 참나무 양은 20t. 적재량을 2배 이상 꽉꽉 실은 5t 트럭 2대 분량을 감당하려면 직접 조림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기계로 나무를 베지만 예전에는 도끼로 일일이 베어내곤 했습니다. 덕분에 나무를 베고 장작을 패는 일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지요. 산에 있는 나무 한 그루를 보더라도 ‘아, 이 나무는 다듬어 숯을 만들면 얼마가 나오겠다’ 하는 계산이 바로 나옵니다”


순도 100% 참숯만을 고집

숯은 대표적인 ‘슬로 제품’이다. 가마 하나당 고작해야 1년에 10번 불을 땐다. 숯 하나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자칫 불량이 나오면 납품에 차질을 빚는다. 30년 넘는 경험으로 ‘눈 감고도’ 숯을 구울 수 있는 노 씨지만 지금도 나무에 불이 잘 붙었는지, 연기 상태는 괜찮은지 가마 옆에 붙어 늘 꼼꼼히 살피는 이유다.
숯을 굽는 것은 흡사 된장이나 간장을 담그는 것과 같다. 은근함이 생명이라는 말이다. 먼저 산에서 베어 온 좋은 참나무를 적당하게 절단한 뒤 가마 속에 차곡차곡 쌓는다. 다 쌓았으면 가로 40cm, 세로 20cm 정도의 작은 창문, 즉 아궁이만 남기고 진흙으로 가마입구를 꼭꼭 막는다. 그런 다음 나무 장작에 불을 붙여 아궁이로 밀어 넣으면 참나무가 타기 시작하는데, 15~18일을 계속해서 불을 때준다. 제대로 된 숯이 되느냐 안 되느냐는 이때 달려 있다. 너무 일찍 불을 꺼서도 안 되고 너무 오래 태워서도 안 된다. 불을 충분히 때준 후에는 불을 끄고 1주일 정도 식힌다. 다 식혔으면 앞서 진흙으로 봉한 가마 입구를 뜯어내 가마 속의 숯을 꺼낸다.
“불 기술이 핵심입니다. 그저 나무에 불만 붙여 태우는 것이 아니라, 굴뚝에서 올라오는 연기를 보고 불의 세기를 조절해줘야 품질 좋은 참숯을 얻을 수 있지요. 불 조절을 자칫 잘못하면 숯이 바삭바삭하게 부서져버리기 일쑤입니다. 은근한 불에 오래도록 잘 태워야 숯이 단단해지지요”


다양한 숯 제품 공급으로 소비자 신뢰를 한 몸에

이렇게 생산한 숯은 갈빗집 등 요식 업소에 70%쯤나가고 나머지 30%는 실내 장식물인 숯부작 등의 재료로 공급한다. 갈빗집용 참숯은 30kg들이 한 자루에 2만 5,000원 선을 받는데, 값이 좋을 때는 3만 5,000~4만원도 나간다. 노 씨에겐 오랜 신뢰를 바탕으로 그의 참숯만을 고정적으로 공급받는 단골 식당이 꽤 있다. 숯부작에 쓰이는 참숯은 가마에서 꺼낸 숯을 예쁘게 다듬어 원통 모양으로 만들어 공급하는데, 품이 많이 들어 값도 3배 정도 더 비싸다.
숯과 함께 생산하는 목초액 역시 최상의 품질을 자랑한다. 목초액이라 하면 숯을 굽는 과정에서 나오는 연기를 냉각해 액체 상태로 만든 것이다. 최근 들어 목초액이 농작물의 병해충 방제나 축사의 악취를 제거하는 데 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지면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면서 일부에서는 정제한 목초액에 물을 섞어 양을 불리기도 하는데, 노 씨는 물 한 방울 섞지 않은 진한 목초액만을 생산한다. 20l들이 한 통에 1만 5,000~2만원 하는 그의 목초액은 특히 인근 양계장에서 인기가 좋다.
숯을 만들고 난 재, 즉 숯껍데기는 인근 축산 농가에 사료로 공급한다. 공급 가격은 20kg에 8,000원 선. 예로부터 축산 농가는 숯을 소나 돼지의 설사병을 막는 데 치료약으로 써왔다. 최근에는 친환경 유기 농업이 확산되면서 밭에다 숯껍데기를 뿌리는 농가들이 늘어 수요가 확산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집을 지을 때 구들장 밑에 깔아놓는다며 사가기도 한다. 숯이 건강에 이롭다는 게 알려지면서 나타난 현상들이다. 그러고 보면 숯은 버릴 게 하나도 없는 자연의 선물인 셈이다.


삼대(三代)로 이어지는 숯 열정

경기 안성 토박이인 노 씨가 숯가마를 하게 된 것은 선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선친은 일제강점기에 직접 숯을 굽기도 했지만 숯을 전문적으로 굽는 당대 최고의 일꾼들을 부리고 있었다. 때문에 어린 시절 산에서 나무를 베고 숯을 굽는 것은 지겨울 만큼 봐왔다는 노 씨. 숯 굽는 일이 싫어 중학교 입학금을 갖고 몰래 상경하는 객기도 부려봤지만, 자석에 이끌리듯 다시 숯가마 앞으로 돌아왔다.
이후 묵묵히 숯 하나에 매진해온 노 씨. 하지만 그에게도 고민은 있다. 고환율로 잠시 주춤하던 중국산 숯 제품 수입량이 최근 다시 느는 데다, 가마에서 나는 연기에 대한 민원으로 행정당국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
“지난 2년 동안 물량이 달릴 정도로 수요가 높았지만 두어달 전부터는 잘 팔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맘때에는 재고가 하나도 없어야 하는데, 아직도 판매되지 못한 재고가 저렇게 쌓여 있잖습니까. 수지 타산이 안 맞아 불때는 일을 돕는 일꾼도 줄이고 급여도 월급제에서 일당제로 바꾸었습니다”
중국산 숯은 20kg 한 포대에 1만원 정도밖에 되지 않아 가격 경쟁력에서 국산을 압도한다. 품질은 제쳐두고 값싼 것만을 따지는 소비자가 때론 야속하고, 자꾸만 다른 곳으로 옮기라는 지자체의 요구가 못내 아쉽지만 평생 해온 이 일을 놓지 않을 것이라는 노 씨.
“숯으로 5남매를 키웠고 1년에 700가마를 생산할 정도로 논도 많이 일궜습니다. 한우도 50마리를 키우고 있고요. 제가 이 지역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는 것은 모두 숯 덕분입니다. 힘이 들긴 하지만 숯을 굽는다는 자부심도 크고요. 이 때문에라도 아들들이 제 뒤를 이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그의 바람대로 3명의 아들은 산림청 등지에서 임업인 교육을 이수하며 아버지 밑에서 착실하게 경험을 쌓고 있다. 산에서 나무를 베는 기계를 몰 수 있는 자격증도 땄다. 노 씨를 찾은 날 숯가마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는 그의 늦둥이 아들 승천(32세) 씨에게 물었다. 아버님의 뒤를 이어 이 일을 계속 할 것이냐고.
“저야 당연히 하고 싶지만, 아버지가 물려주셔야 하죠, 하하” 찬 바람을 헤치고 숯가마에 옆에 선 임업인 부자(父子)의 얼굴이 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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