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농/약초

산에서 나는 명약 길초근과 강활

강토백오 2011. 11. 27. 22:09

산에서 나는 명약 길초근과 강활
글·사진 / 김산들 (디지털 농업 기자)
길초근 꽃. 길초근은 초여름 연분홍색 꽃을 피운다.
강활 꽃. 흰 꽃이 피는 강활은 강원, 경북의 산간지역에서 자생한다.
길초근, 강활 등 산에서 나는 자생 약초를 재배하는 고광배 씨. 그는 “많이 알려진 작목은 아니지만, 한약재나 의약품 원료로 활용가치를 인정받고있어 기대가 크다”고 말한다.
길초근 잎. 봄에는 새순을 무쳐 먹는다. 이때는 냄새가 거의 없다.
수확을 앞둔 길초근 밭의 모습. 잎이 누렇게 변하면서부터 수확이 시작된다.
길초근의 뿌리와 잎의 모습. 잎이 말라서 누렇게 되기 시작할 때쯤 뿌리를 수확한다.
강활 뿌리는 겨울철 두통에 특히 효과가 높아 겨울이면 한약재로 더 많이 찾는다.
족두리풀. 이 뿌리를 건조한 것이 세신이다. 두 통, 복통, 오한, 발열, 천식, 가래, 축농증 등에 쓰이는데, 강활·길초근과 함께 고씨가 눈여겨보는 자생 약초다.

길초근(吉草根)은 ‘풀과 뿌리가 몸에 길하다’는 뜻을 가진 자생 약초다. 이름부터가 건강에 좋다는 뜻이지만 그동안 국내산은 드물었다. 그러다 국산 길초근의 가치를 알아본 외국 제약회사의 요청으로 최근 재배가 늘고 있다. 길초근 재배농가 고광배 씨는 겨울철 두통, 혈액순환에 좋다고 알려진 ‘강활’도 함께 재배하고 있다.



독특한 냄새 있는 길초근 뿌리, 의약품 원료 되다

“길초근은 이 지역에서 옛날부터 나던 약초예요. 가지 끝에 연분홍색 작은 꽃이 두 겹으로 둥글게 피는 것이 수국과 비슷해 아름답죠. 하지만 연노랑을 띠는 수염뿌리에서는 쥐오줌 냄새가 나서 사람들이 따가거나 벌레가 달라붙지 않아요. 한약재로 많이 쓰는데 국내 한약재 시장에서는 중국산에 밀려 수요가 없고, 독특한 냄새 때문에 농가가 직접 유통하거나 소비처를 찾기도 어려웠죠.”
길초근은 강원도나 전국의 산악지대에서 볼 수 있다. 여러해살이풀로 높이는 1m 정도다. 원줄기가 높이 45~90cm 정도로 자란 뒤, 윗부분에서 가지가 갈라진다. 진한 녹색의 줄기는 속이 비어 있고, 10여 개의 마디가 있다. 마디 부근에는 백색의 털이 있어 다른 풀과 구별된다. 뿌리 쪽에 붙어나는 잎은 마주 보고 나는데 5~7개가 날개 모양으로 갈라져, 꽃이 필 때가 되면 없어진다. 잎은 끝 부분이 날카롭고, 그 옆에 양쪽으로 난 잎은 길고 둥근 모양이 특징이다.
강원도 평창군에서 한방 약초를 재배하는 고광배 씨는 작목반 내 몇몇 농가들과 함께 길초근을 재배하고 있다. 고씨는 평창군에서 길초근을 수출유망작목으로 지정하고 농가재배를 독려해 참여하게 됐다.
한약재로는 길초근 뿌리를 쓰지만, 어린순은 나물로 먹는다. 잎이나 꽃에는 약리적인 효과가 없지만 독특한 향도 나지 않아, 산나물처럼 먹을 수 있다. 꽃색과 모양이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심기도 한다.
하지만 길초근의 이름과 가능성은 단연 뿌리다. 가을에 잎줄기가 시들기 시작하면 뿌리를 캐서 물로 씻어 흙을 털어내고 그늘에서 말려 약재로 쓴다. 뿌리 속 성분은 진경, 히스테리, 신경과민 등에 효과적이라는 게 연구결과 밝혀졌다. 최근에는 진정작용이 알려지면서, 외국 제약회사에서 히스테리, 신경과민증, 정신불안 등의 치료약 원료로 사용되고 있다.
“최근 외국의 제약회사에서 원료로 요청하면서 소득작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일본으로 수출돼 주요성분을 추출한 뒤, 다시 독일의 제약회사에서 신경안정제로 만든다고 하네요.”
국내에서도 의약품 원료로 사용되고 있다. 최근 국내 한 제약업체는 순수 생약성분을 바탕으로 한 신경성 심장질환 치료제를 내놨다. 심장병 환자가 아니더라도, 평소 가슴두근거림 증상이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편이라면 심장 질환치료제 복용이 효과적이라는 게 발표되면서 수요도 늘고 있다. 이 치료제의 원료성분 중 하나가 바로 길초근이다. 항우울 및 항불안 작용을 하는 길초근 성분이 신경성 질환을 효과적으로 완화시켜주는 것이다.


우량 종자 생산으로 고품질 생산 자신 있어

길초근은 야생으로 전국의 산에서 자라는데, 최근 무분별하게 채취하면서 종자 구하기가 힘들어졌다. 그래서 고씨는 지난해 길초근 종자 하나에 300원씩 주고 구입해 밭에 심었다. 산에서 난 야생 종자가 품질이 좋은데 바쁜 영농철이라 어쩔 수 없이 산에서 채취한 것을 구입해야 했다. 하지만 이 종자를 선발하고, 개량하면서 올해부터는 우량 종자를 걱정 없이 심을 생각이다.
“일단 파종하고 나면 재배 초기까지는 비용이나 힘이 별로 안 듭니다. 3분의 2 정도 발아됐을 때 볏짚을 걷어주고, 잎이 2~3장씩 나오면 2~3cm 간격으로 1본씩만 남기고 솎아주는데 이때도 부부 두 사람이면 충분하죠. 초여름까지 물 관리 정도만 잘 해주면 크게 손이 안 가요.”
길초근은 물빠짐이 좋고 습기가 잘 유지되는 사질양토나 양토가 좋다. 파종은 이른 봄 얼음이 풀리는 대로 시작한다. 종자 1,000알의 무게가 2g에 불과할 정도로 작다. 이랑 너비 1.5m, 높이 10cm의 두둑을 만들고, 5cm 간격으로 줄뿌림 한다. 파종이 끝나면 부엽토나 상토로 덮어주고 물을 충분히 주면 된다. 독특한 냄새는 벌레가 달라붙지 않게 해주니 재배하기엔 오히려 편하다.
수확은 지역에 따라 9월 하순부터 11월 상순까지 다르다. 평창지역의 경우 9월 말부터 잎이 누렇게 되고, 10월 말 쇠스랑이나 삽으로 땅을 깊이 판 후 캐낸다.
“수확할 때 일손이 많이 드는 게 유일한 단점이죠. 뿌리를 쓰는 다른 약초들과 달리 길초근은 옥수수처럼 수염뿌리예요. 세심하게 작업해야 온전히 수확할 수 있죠. 수확 후에는 밭에 그대로 일주일쯤 두고 햇빛에 완전히 말립니다. 완전 건조한 뿌리를 쓰기 때문에 수확 후 유통은 편하죠.”


겨울철, 두통과 혈액순환에 좋은 보약 ‘강활’

고씨는 길초근보다 한두 해 앞서 ‘강활’ 재배를 시작했다. 강활은 산에서도 물이 있는 계곡 근처에서 잘 자라는 미나리과 풀이다. 강호리라고도 불리는데 2m 높이로 자라며 8~9월에 흰 꽃을 피운다. 강원도를 비롯해 경북 봉화, 영주 등의 산간지역에서 주로 재배되며, 2009년을 기준으로 전국 재배면적은 60ha에 달한다.
봄에는 어린순을 뜯어다가 산나물로 무쳐 먹는다. 생으로 튀김을 해도 좋은데 쓴맛을 거의 느낄 수 없이 고소한 맛이 난다. 술에 담가 숙성시켜서 아침저녁으로 조금씩 마시면 관절염이나 중풍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강활 뿌리는 말려서 잘라놓으면 당귀처럼 보여요. 한방에서는 뿌리를 감기, 두통, 신경통, 류머티즘 관절염, 중풍 등의 처방에 약재로 씁니다. 목뒤와 등허리 등 온몸이 지끈지끈 아픈 듯이 불쾌한 증세에 뿌리를 달여 마시면 몸이 가뿐해지고, 신경통 통증을 사라지게 한다고 해요. 악성 감기, 여러 가지 염증을 없애는 데에는 뿌리를 잘게 썰어 달여서 매일 마시면 되고요.” 특히 겨울철 유난히 심해지는 두통이나 혈액순환 장애에 큰 도움이 된다. 어느 부위 두통이냐에 따라 먹어야 할 약초나 한약재가 다른데, 강활은 머리 윗부분과 머리 뒤쪽이 아플 때 효과적이다. 최근에는 기존의 재래종에 비해 추대가 거의 안 되고 약재로 쓰는 뿌리 수량도 31%가 많은 신품종이 육성되기도 했다.
재배도 어렵지 않다. 서늘하고 축축한 환경조건이라면 추위나 그늘에서도 잘 자란다. 3~4월에 파종하는데, 충분히 축축한 두둑을 만들어서 그 위에 종자를 뿌려준다. 모가 6~10cm 정도 자란 다음에는 솎아주고, 포기 간격을 정리한다.
“꽃봉오리가 나오면 꽃줄기를 잘라내 영양분이 뿌리 쪽으로만 갈 수 있게 해줍니다. 채취는 10월 말경 뿌리와 뿌리줄기를 파낸 뒤, 잔뿌리와 흙을 깨끗이 정리해 밭에 그냥 둡니다. 햇빛에 충분히 마르면 건조기에서 완전히 말려 약재로 가공합니다.”


품질 확실하니 머지않아 소비 늘 것

“저를 비롯해 작목반에서 생산하는 길초근은 전량 일본으로 수출됩니다. 해외에서 먼저 요청이 들어왔기 때문도 있지만, 국내 시장을 말하기엔 아직 길초근은 낯설고 국산에 대한 인지도가 낮아요.”
고광배 씨가 재배하는 길초근, 강활 등은 강원도 평창지역에 자생하는 작물이다. 지금까지는 원래부터 산에 있던 약초, 소득작물로 본격 재배하기에는 수입산 때문에 가격경쟁력이 없는 작물 정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한약재뿐만 아니라 의약품 원료로서의 가치가 재평가되고 있다. 특히 다른 나라보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자생 약초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이에 강원도 평창군은 한방의료산업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 길초근과 강활, 세신, 당귀 등이 중심을 이룬다.
특히 길초근에 대해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관심과 지원을 해주고 있다. 길초근은 다른 한방 약초와 비교할 때 국내 수요가 적고, 이미 다양한 가공제품이 나와 있는 약초도 아니다. 한약재나 의약품으로 쓰는 것 외에 소비자들이 가정에서 쉽게 먹을 수 있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대부분 수입산을 대체하거나, 식용 또는 가공식품 정도로 시장을 보는 것과 달리, 길초근은 수출농산물로써 의약품 원료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여기에는 국내 한약재시장의 문제도 한 원인이다. 한 해 수십만 근씩 수입 한약재가 들어오지만 서울 경동시장 등에서 국내 한약재로 둔갑해, 국산 한약재의 자리를 빼앗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실시하는 수입 한약재에 대한 정밀검사에 길초근은 지난 2008년부터 포함됐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당귀나 황기처럼 국산 한약재가 알려진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지만, 길초근처럼 이름조차 생소한 약초는 국내에서 시장을 차지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
“아직 국내 시장을 생각하긴 이르지만 길초근이 전 세계에 다 재배되는 약초가 아니잖아요. 새로운 질병이나 현대병을 치료하는 원료로 천연물질이 주목받는 추세를 생각할 때,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은 다음에 국내 시장이 열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길초근이 재배되는 일본에서도 한국산을 더 우수하다고 하니, 앞으로 국산 길초근의 재배가 늘고 수출망이 확대되겠죠. 강활은 이미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알음알음 소문이 나는 중이에요. 한약으로만 먹을 것이 아니라 보리차나 녹차 끓여 마시듯 가정에서도 늘 곁에 두고 마시게 되면 소비가 늘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