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무등산

강토백오 2011. 11. 27. 21:17

서석(瑞石)의 주상절리 병풍, 입석(立石)에서 드러나다
글·사진 / 임주훈 (국립산림과학원 산림복원연구과)
광주를 품에 안은 무등산은 해발 1,186m에 달하는 높은 산이지만 멀리서 보기에는 그저 조그마한 뒷산처럼 단순한 능선을 가진 무덤덤한 산이다. 무등산(無等山)의 어원은 다양한데 비할 데 없이 높고 큰 산,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산이라는 해석도 있고 ‘무당산’을 의미하는 종교적 중심지로서의 지위를 가진 산을 의미하는가 하면, 불교적 어원인 ‘무유등등(無有等等)’ 즉 부처님은 가장 높은 자리에 있어서 견줄 이가 없다는 뜻을 담고 있는 산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사실 비로봉, 반야봉, 삼존석, 의상봉, 윤필봉, 규봉 등의 지명들이 나타내는 것처럼 많은 불교설화를 담고 있다.
무등산은 능선과 계곡이 매우 크나 그 굴곡이 극히 단순하고 능선에는 주상절리로 이루어진 바위들이 병풍을 두른 듯 절경을 만들며 펼쳐져 있다. 그 중 가장 뛰어난 것이 서석대와 입석대로 빛고을 광주인의 자존심이다. 물론 수km에 달하는 억새밭이 능선 주변에 펼쳐져 있고 거대한 너덜지대가 천왕봉 자락을 덮고 있는 것도 독특하다. 무등산 옛길을 따라 원효사 주차장을 출발하여 서석대를 오르는 숲길을 걷는 즐거움은 장거리 산행이 가진 특징인 끝없는 인내를 수반한다. 물은 가능하면 큰 병으로 준비하고 체력을 보충할 간단한 먹을거리는 꼭 준비하는 것이 좋다. 모기에 대비한 의약품과 강렬한 햇볕을 가릴 모자도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여름 날씨는 온도대를 반영하는 듯 남북 간의 차이가 뚜렷하다. 중부지방에 장마전선이 머물러 100년 주기의 폭우가 쏟아져 산사태로 고생하던 날, 남부지방에서는 폭염이 기승을 부려 열대야의 무더운 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장마전선이 언제 이동할지 모르는 예측불허의 시기이기에 가능하면 접근이 용이한 산을 찾다가 광주 무등산을 선택하였다. 처음에는 KTX를 타고 3시간 만에 광주역에 도착하여 버스로 이동한다는 구상을 하였으나 아무래도 광주에서 1박을 하고 오는 것이 편할 것 같아 차로 출발하였다. 역시나 토요일의 경부고속도로는 정체 상태를 벗어날 수 없었다. 새벽에 출발했음에도 12시가 넘어서야 원효사 입구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감나무가 파란 열매를 달고 있는 모습이 풍요로워 보이는 주차장 위쪽에는 한옥으로 된 음식점이 있는데 원형 연못의 수련 밑 비단잉어, 팽나무 아래 심어진 치자나무의 하얀 꽃향기, 단지에 심은 콩짜개란 등에서 독특한 정원문화를 즐길 수 있었다.
산행에 부담을 느낄까 염려되어 정갈하게 담긴 국수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물, 과자와 사탕 등의 먹거리를 챙긴 뒤 옛길을 따라 서석대를 향했다. 무등산 옛길 2구간으로 서석대까지는 4.2km. 오후에 출발하는 산행이기에 그리 만만치 않은 거리이다. 옛길이 시작되는 계단 옆에는 커다란 단풍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옛길은 숲을 누비며 이어져 있다. 아스팔트길을 건너 계단 옆에는 옛길 안내도가 있으며 네모반듯하게 생긴 자연석에 글씨를 새긴 표석이 서 있다. 계단을 오르니 다시 평탄한 길이 이어지는데 왼쪽으로 음식점을 지나며 사람들로 북적이는 계곡을 비껴 소나무와 활엽수가 섞여 있는 숲을 지난다. 리기다소나무와 삼나무가 식재되어 곧은 줄기가 쭉쭉 뻗은 숲도 지난다. 무아지경의 숲길인데 삼나무는 누군가에게 벗김을 당한 듯 붉은 표피를 드러내고 있다.
계곡의 물소리가 사라질 무렵 제철유적지가 나온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무등산에서 철이 나온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제철에 필요한 시설과 철에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가공하던 시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가까운 계곡의 사철(砂鐵)을 원료로 하여 화살촉, 추 모양의 철기, 못 등을 만들었다. 제철 후에 남은 찌꺼기인 듯 길바닥에 새까만 자갈 크기의 돌들이 깔려 있다. 나무를 휘감고 올라 뒤덮어버린 줄사철나무가 있는 곳에서 조금 더 올라가니 임진왜란 때 김덕령 장군이 칼과 창을 만들었다는 주검동(鑄劍洞)이 이곳임을 새긴 바위가 나타난다. 이어지는 숲은 오르막길인가 싶으면 평탄한 길이 나오고 다시 오르막길이 되는데 그리 가파르지 않은 길을 따라가는데 바위들이 작은 계곡을 따라 덮여 있다.
한 사람이 통과할 만한 좁은 길로 가다가 어느새 서너 명이 함께 갈 수 있는 길이 나타난다. 물통거리라고 하여 옛날 나무꾼들이 땔감이나 숯을 구워 나르던 길이다. 널찍한 길가에는 주름조개풀이 작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길옆 커다란 팽나무는 으름덩굴이 기어올라 줄을 내려뜨린 듯한 모습이다. 길은 치마바위를 지나면서 경사가 급해진다. 땀을 훔치며 활엽수림 숲길을 올라가다가 ‘원효계곡 시원지’를 만난다. 계곡물이 흐르는 것이다. 짐을 내려놓고 등산화를 풀어 양말을 벗고 물속에 발을 담그는 긴 휴식시간을 갖는다.
다시 오르막길을 걷는데 이번에 돌밭이 나타난다. 길을 아예 돌로 깐 곳이다. 주변의 숲은 활엽수림인데 바닥은 개고사리로 덮여 있다. 오르막길이 끝나고 넓은 길이 왼쪽으로 이어지는데 나무 사이로 천왕봉이 보인다. 군부대 보급품 종착지 안내표지와 녹슨 흔적물들을 지나가면 다시 좁은 오르막길로 바뀐다. 지칠 대로 지친 눈앞에 주황색 동자꽃이 나타나 힘을 북돋는다. 한두 개체로 그치던 동자꽃은 지그재그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 이곳저곳에 무리지어 나타난다. 드디어 능선에 도달한 것 같아 주위를 둘러보니 멀리 완만한 능선에 중봉과 통신시설이 있는 건물이 나타난다.
길가 풀섶에는 하얀 꽃이 총상화서에 달린 큰까치수염 위에 밝은 갈색의 나비가 앉아 있다. 고추나무는 열매집을 단풍나무처럼 주렁주렁 매달고 뚜렷한 외형을 드러내고 있다. 노루오줌은 옅은 홍자색의 꽃을 원추화서에 달고 있다. 약수가 흐르는 듯한 조그마한 도랑 옆에 서 있는 버드나무는 줄기가 온통 이끼로 덮여 있다. 피목이 발달하여 줄기가 유난히 우둘투둘해 보이는 비목은 산 아래에서 관목상으로만 나타나다가 드디어 큰 나무로 나타난다. 남색의 둘레꽃을 피운 산수국은 전석이 발달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군부대로 가는 도로를 가로질러 올라가는 길은 바람에 맞아 키가 자라지 못한 왜성 신갈나무숲으로, 돌계단으로 이어지는데 매우 가파르기 때문에 숨을 헐떡이며 쉬엄쉬엄 오른다. 그러다 서석대가 올려다보이는 바위에 올라앉아 아예 짐을 풀고 쉰다. 통신시설이 있는 중봉 능선은 이미 저 아래 광주시를 배경으로 내려다보인 지 오래다. 바위 너머 멀리 천왕봉이 지금까지보다는 훨씬 가까이 올려다보인다. 바위에 누워 하늘을 보며 허리를 쫙 펴고 피로를 푼 다음 짐을 챙겨 다시 길을 나선다. 이미 서석대에 거의 온 것으로 숲 속 작은 바위의 모습도 층이 져서 여러 등산객이 얹은 작은 돌들을 이고 있다. 이어서 나타나는 엄청난 크기의 주상절리 바위 밑에는 산수국이 꽃무리를 이루고 있다. 나무계단을 따라 올라가다 아래를 내려다보며 감탄을 하며 다시 오르다 서석대 전망대로 간다. 그리곤 탄성을 올린다. 아, 서석대! 참으로 상서로운 바위기둥들이 병풍을 두른 듯 펼쳐져 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장불재와 인근의 거대한 통신시설이 있어 마치 영화 속의 우주기지를 보는 듯하다.
전망대에서 또 한참의 시간을 보낸 뒤 산을 오른다. 물레나물이 노란색의 풍차 같은 꽃을 피워 산의 높이를 가늠케 한다. 설악산에 올라서도 딱 한 송이를 보았는데 여기서도 홀로 서 있다. 그리고는 무등산 옛길 종점을 알리는 40번 표지목을 만난다. 그리고 차단울타리 너머 남쪽으로 이어진 능선의 끝에는 천왕봉이 갈 수 없는 나라처럼 아련히 자리하고 있다.
무등산에 오면 서석대와 입석대는 보아야 제맛이라는 등산객의 말을 듣고 입석대로 향해 내려간다. 서석대와 천왕봉을 바라보며 무등산의 멋을 한껏 누려보다가 승천암을 만난다. 무엇엔가 쫓기던 산양을 스님이 숨겨주었는데 어느 날 스님 꿈에 이무기가 나타나 산양을 잡아먹고 승천해야 하는데 스님이 훼방을 놓아 실패했다며 만약 종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스님이라도 잡아먹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얼마 후 난데없이 우렁찬 종소리가 들려 이무기는 스님을 풀어주고 승천하였다는 전설이 있는 바위이다. 그리고 작은 입석대를 만난다. 사람 키 두 배만 한 바위 십여 개가 서 있는 곳인데 주변에는 구멍을 뚫어놓은 암반이 몇 개 나타난다. 예전에 이 주위에 암자들이 있었다는 흔적이다. 그리고 해발 1,017m에 이르러 드디어 입석대(立石臺)를 만난다. 백악기 후기(약 7,000만 년 전)에 화산이 폭발하여 솟구쳐 오른 용암이 식을 때 수축하여 생긴 주상절리대(柱狀節理臺)로 높이 10~16m에 이르는 5~8모로 된 돌기둥들이 우람하게 둘러선 것으로 예전에 찾아왔던 선인들이 이름을 새긴 바위도 몇 개 있다.
해발 900m, 장불재에 거의 도달하여 올려다보이는 입석대 아래로는 식재한 구상나무가 사면을 덮고 있다. 장불재에서 공원관리사무소까지는 6.4km로 내려가기에 만만치 않은 거리이다. 흑자색의 반점이 산포하고 꽃잎 끝을 뒤로 말은 주황색 꽃을 내려 핀 참나리의 아름다운 자태를 뒤로 한 채 새까만 구름이 덮인 하늘을 바라보며 관리도로를 따라 부지런히 걸어 원효사 주차장까지 내려오니 7시 30분. 올라가고 내려오는 길이 모두 다 인내를 요하는 참 길고 긴 여정이었다.

병풍을 두른 듯한 서석대의 주상절리
무등산 옛길을 알리는 표석
중봉 능선에서 내려다보이는 광주시가지
모기 물린 데 잎을 찧어 바르면 아프지도 않고 잘 낳는다는 주름 조개풀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선을 가진 이무기의 승천암
둥근 연못 수련 밑에서 꼼짝하지 않는 비단잉어
임진왜란 때 김덕령 장군이 칼과 창을 만들었다는 주검동(鑄劍洞)바위
바위틈에 붙어 자라 노란색 꽃을 피운 바위채송화
구름 속에 숨은 중봉 가는 길
40번 표지목. 이곳은 무등산 옛길 종점
관리도로를 따라 내려오면서 만난 소나무숲길
단지 속 콩짜개란
땔감과 숯을 지어 날랐다는 물통 거리 숲길
산수국과 주상절리
정상에서 본 서석대. 육각형의 돌을 모아놓은 듯하다.
사람 키 두 배만 한 크기로 바위들이 빼곡이 쌓여 있는 작은 입석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