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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엽수는 한국에서 주로 장마가 끝난 다음 연약한 잎이 강한 햇볕에 의해 타들어가서 엽소 현상을 보인다. 유럽에서는 마로니에로 불리는데 장마가 없는 여름철 더운 날씨에서도 비슷한 피해를 받아 본래 엽소에 약한 수종으로 분류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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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가로수로 가장 많이 심는 피나무의 잎이 여름철 강한 햇볕에 의해 마른 엽소피해를 입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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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의 피소 현상이다. 어린 느티나무는 나무껍질이 얇아서 피소피해를 자주 받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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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나무에서 여름철 오후 강한 햇볕이 쬐는 남서쪽의 나무껍질이 타서 죽는 피소(皮燒, sunscald) 현상이다. 불규칙하게 껍질이 벗겨지며 치유가 잘 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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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1950년대에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다. 당시 한여름 7월의 낮 최고 기온이 30℃까지 올라가면 아주 더운 날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에는 대도시에서 여름철에 35℃ 정도는 쉽게 올라가고 간혹 40℃에 육박하는 경우도 있다. 지구온난화 현상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여름철 포장도로와 콘크리트 건물에서 반사되는 열은 국소적으로 기온을 상승시켜 50℃에 접근하는 경우도 있는데, 대도시의 열섬 효과로 이어진다. 특히 햇빛을 반사시키는 강화유리를 남향이나 서향에 설치한 경우에는 상태를 더 악화시킨다. 여름철 냉방기기의 환풍기에서 나오는 뜨거운 바람도 비슷한 효과를 가져온다. 40℃ 이상의 온도에서는 대부분의 생물이 견디기 어렵다. 생물은 세포로 구성되어 있는데, 세포는 온도 변화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한다. 세포 속의 원형질막은 지질(脂質)을 함유하고 있어 온도가 올라가면 지질이 변성을 일으켜 물질이 새어 나와 세포가 제구실을 못한다. 모든 생물은 호흡을 하는데 호흡은 온도에 비례하여 증가한다. 온도가 10℃ 올라갈 때마다 세포의 호흡작용은 두 배로 늘어난다. 높은 온도에서는 호흡작용이 너무 왕성하여 에너지를 필요 이상으로 소모하면서 탈진하게 된다. 그리고 생물의 모든 대사 작용을 담당하는 효소는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는데, 높은 온도에서는 효소의 모양이 바뀌어 제 기능을 못한다. 무더위 속에서 나무는 제대로 견디는 것일까? 식물이 생장할 수 있는 최저 온도와 최고 온도 사이의 범위를 임계온도(臨界溫度)라고 한다. 임계온도는 식물이 분포하는 위도에 따라서 다르다. 온대지방에서 임계온도는 0℃에서 35℃ 정도지만, 열대지방은 15℃에서 40℃이다. 고산식물의 임계온도는 -5℃에서 25℃ 정도 된다. 즉 나무도 자연분포지에 따라서 더위에 견디는 능력에 큰 차이가 있는 셈이다. 고온(高溫)에 의한 피해 중에서 잎이 마르면서 타들어가는 현상을 엽소(葉燒, leaf scorch)라고 한다. 기온이 올라가면 이에 비례하여 잎의 온도도 함께 상승하고, 증산작용도 증가하게 된다. 이때 바람이 불면 잎의 온도가 내려가지만, 바람이 불지 않으면서 잎에 수분이 부족하게 되면 잎이 마르기 시작한다. 특히 햇볕에 곧바로 노출되어 있는 남향 쪽 수관에 있는 잎이 먼저 피해를 본다. 뿌리로부터 전달되는 수분은 잎의 엽맥을 통해 잎 전체로 퍼지는데, 잎의 가장자리는 수분 공급이 가장 늦기 때문에 엽소 현상이 제일 먼저 나타난다. 한국의 경우 대개 7월 중에 장마가 3~4주 정도 지속되는데, 이 기간 중에는 햇빛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게 된다. 자유생장을 하는 수종들은 여름철에도 키가 크는 것이 특징인데, 이 기간 중에 여름 잎(하엽, 夏葉)을 만든다. 장마 기간 중에 만들어진 여름 잎은 햇빛 부족으로 인해 얇으면서 부드러운 음엽(陰葉, 그늘에서만 살 수 있는 잎)으로 자란다. 장마가 걷히고 강한 햇볕이 비추면 부드러운 음엽이 먼저 피해를 받는다. 활엽수 중에서 칠엽수, 느티나무, 은행나무, 단풍나무, 자작나무에서 자주 볼 수 있는데, 잎의 가장자리가 말리면서 갈색으로 타들어 간다. 침엽수 중에서는 한대성 수종인 주목, 잣나무, 전나무에서도 가끔 볼 수 있다. 칠엽수(七葉樹)는 유럽 원산의 경우 마로니에로 불리는데, 열매에 굵은 돌기가 튀어 나와 있어 마치 도깨비방망이 같이 생겨서 가시칠엽수라고도 하며, 프랑스 파리의 대표적인 가로수로 알려져 있다. 마로니에와 피나무는 유럽 전역에 심어져 있어 유럽에서 가장 흔한 가로수다. 장마가 없는 유럽에서도 이 두 수종에서 엽소 현상이 자주 관찰되는 것으로 보아서 본래 고온에 약한 수종으로 생각된다. 엽소 현상은 여름철에 관찰되는 일시적인 현상으로서 나무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지 않으며, 여름 더위가 물러가거나 물을 충분히 주면 회복되기도 한다. 고온피해 중에서 피소 현상은 나무에 큰 피해를 준다. 피소(皮燒, sunscald)는 나무껍질이 햇볕으로 타는 것을 의미한다. 여름철 오후 남서쪽을 향한 나무껍질이 강한 햇볕에 노출되면 온도가 상승한다. 나무가 정상적으로 증산작용을 하고 있을 때에는 수액이 줄기를 따라서 올라가면서 껍질의 온도를 낮춰주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수분이 부족하여 증산작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껍질의 온도가 올라가면서 피소 현상이 생기는데, 주로 남서쪽을 향한 껍질에서 관찰된다. 피소 현상은 수종에 따라서 그리고 나무가 자란 환경과 나무를 어떻게 관리하는가에 따라서 영향을 받는다. 단풍나무, 물푸레나무, 벽오동, 벚나무, 느티나무, 목련, 매화나무 같이 얇은 껍질을 가진 수종에서 자주 관찰되며, 껍질이 두꺼운 참나무류와 소나무에서는 잘 관찰되지 않는다. 그늘 속에 있거나 어려서부터 서서히 햇빛에 노출되면서 자란 나무는 피소에 대한 저항성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밑가지를 한꺼번에 제거하거나 솎아베기를 실시하거나 나무를 옮겨 심은 후 나무껍질이 별안간 햇볕에 노출되면 피소피해를 볼 수 있다. 통풍이 제대로 되지 않고 열을 반사하는 강화유리 근처에서 자라는 나무에서도 피해가 나타난다. 피소 현상으로 죽은 껍질은 매우 불규칙하게 벗겨지고, 죽은 조직의 가장자리가 지저분하게 되어 자연적인 상처 치유가 어려워진다. 즉 형성층에서 새살이 나와 제대로 상처를 싸 바르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노출된 곳을 통해서 목재부후균이 침입하여 수간이 추가로 썩어서 큰 상처를 만들기도 한다. 나무의 줄기가 상처 없이 곧게 자라 올라가는 것이 나무의 건강 유지와 장수에 제일 중요한 조건 중의 하나임을 감안하면 피소 현상은 나무에게 매우 치명적인 피해를 준다고 할 수 있다. 엽소나 피소 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엽소는 잎의 온도가 상승한 상태에서 수분 부족으로 생기는 피해이므로 온도가 되도록 올라가지 않게 하거나 나무가 물이 부족하지 않게 한다. 나무가 자라는 주변에 통풍을 도모하여 기온이 상승하는 것을 막고, 복사열을 반사하는 강화유리 주변에 나무를 심지 않고, 평소에 적절하게 관수하여 수분 부족을 사전에 방지한다. 피소는 나무껍질의 온도가 상승하여 생기므로 이를 사전에 방지하는 방법을 쓴다. 우선 관수를 충분히 하여 증산작용을 촉진시켜 줄기를 식혀준다. 줄기에 석회유황합제나 흰 페인트를 발라서 햇볕을 반사시키거나 줄기를 녹화마대로 감싸서 보호해준다. 석회유황합제는 천공성 해충을 방제하기도 한다. 녹화마대는 나무를 옮겨 심을 때 줄기에 상처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하는데, 동시에 피소피해도 막아준다. 노출된 검은색 토양은 햇볕을 받으면 온도가 상승하여 나무 밑동에 피소를 유발하므로 토양 표면을 유기물로 멀칭(mulching)하면 도움이 된다. 수목 관리 측면에서도 방제법이 있다. 나무가 밀식되어 있을 때 한 번에 과도한 솎아베기(간벌)를 실시하지 말고, 단계적으로 베어 내어 나무껍질이 강한 햇볕에 점진적으로 노출되면서 적응하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밑가지를 되도록 그대로 두어 밑동의 껍질이 햇볕에 노출되지 않게 한다. 가장 환경친화적이면서 생태적인 방제법은 수목의 자연분포지를 활용하는 것이다. 수목은 자기가 좋아하는 기후대(氣候帶)가 있다. 한대수종이나 고산수종은 서늘한 기후를 좋아하며, 엽소나 피소에 약하다. 따라서 더위에 약한 잣나무, 주목, 전나무, 자작나무 같은 고산성 수종을 도시 한복판이나 남쪽 지방에 심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될수록 그리고 도시가 대형화될수록 위의 수종들은 한국에서 조경수로서 적합하지 않게 될 것이다.  |